[위클리 리포트] 재점화된 구글의 지도 반출 논란… 2007, 2016년에 이어 세 번째
“5000:1 고정밀 지도 있어야 정확하게 길 안내 가능” 주장
군사 보안시설 좌표 유출 위험… 네이버 등 국내 기업 역차별 우려
업계선 구글 신사업 활용 의구심… 불허 땐 美 통상 갈등 불씨 가능성
정부 “국익 최우선 결정할 것”… 최종 결론은 이르면 7월 나올 듯
《9년만에 또 “고정밀 지도 달라”는 구글
구글이 지난달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서를 냈다. 2007, 2016년 불허 통보를 받은 구글이 9년 만에 지도 반출을 재요청하면서 안보, 산업, 외교까지 얽힌 지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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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과 국내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길 비교 20일 기자가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까지 차량 경로 안내를 구글맵(위)과 네이버지도 애플리케이션(아래)에서 각각 이용해 봤다. 국내에서 지하철 등 대중교통 길 찾기 서비스만 제공하는 구글맵에서는 ‘경로를 찾을 수 없다’는 문구가 떴다. 반면 네이버지도에서는 경로와 예상 시간, 정체 상황까지 상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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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지난달 국토지리정보원에 한국 고정밀 지도를 해외로 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구글이 원하는 지도는 5000 대 1 대축척 지도다. 5000cm(50m) 거리를 지도상 1cm로 표현한 매우 정밀한 지도다. 건물, 도로, 지형까지 세부 사항이 표기돼 있다. 구글은 서버를 한국에 설치하지 않아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정부로부터 반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글이 전과 달리 정부의 보안조치 요구를 일부 수용했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 마찰로 번질 가능성까지 따져봐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글의 지도 반출 ‘삼수’에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글로벌 스탠더드 vs 국가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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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한국 고정밀 지도를 요구하는 주된 근거로 국내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불편을 들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사용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구글맵은 유독 한국에서 정확도가 낮은데, 구글은 한국 고정밀 지도를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구글의 요구에 대해 “국익에 우선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건 국가 안보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와 위성영상을 결합할 경우 군사적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도학회지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고정밀 지도를 위성영상과 중첩하면 군사 핵심 시설 중 하나인 수도방위사령부 내 침투로, 보급선,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 안보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금까지 정부가 해외 기업에 고정밀 지도를 제공한 사례는 없었다. 과거 애플, BMW 등이 상업용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지만 모두 불허했다.
구글이 이번에 요구한 건 주요 보안 시설 위치를 삭제한 고정밀 지도다. 정부 기관, 군사 시설, 보안 시설 등 정부가 보안 필요성을 인정한 시설에 대해서는 구글이 직접 가림 처리하겠다는 것. 2016년 보안 시설 가림(blur) 처리 등 정부가 제안한 지도 반출 조건을 거절한 때와 비교하면 이번엔 구글이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또 이번에 구글이 제출한 국외 반출 허가 신청서에는 정부 요청 시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기재되지 않았다. 먼저 데이터를 제공했다가 구글 정책이 변경될 경우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 세금 안 내는 구글의 ‘무임승차’ 지적도
구글이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면 반출 승인 없이도 고정밀 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은 이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에 데이터센터를 준공했으며 최근에는 영국,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법인세를 제대로 내지 않는 해외 기업이 국민 세금으로 만든 지도를 활용하는 건 무임승차라는 시각도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000 대 1 지도를 최초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7000억 원이며 매년 이를 갱신하는 데 약 300억 원이 투입된다. 항공사진을 촬영한 후 현장에 사람이 파견돼 등고선, 시설물, 건물명 등을 일일이 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은 반출한 지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료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기존 서비스를 정교화할 수 있다.
● “관광 산업 도움” vs “국내 업체 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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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고정밀 지도 요구 논란은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파까지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도 반출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구글맵이 정교해지면 외국인 관광객의 불편이 줄면서 중장기적으로 관광객 유치 등 관광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도로명주소, 지형도 등 공간정보를 가공해 판매하는 국내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간정보 산업은 2006년 ‘중소기업 간 제한경쟁’ 대상으로 지정될 정도로 영세한 업체가 많다. 국내 공간정보 사업 종사자는 7만4858명이며 사업체 10곳 중 9곳(93.0%)은 연 매출액 100억 원 미만이다. 공간정보 업계에선 시가총액이 2조 달러(약 2908조 원)가 넘는 구글이 시장에 진입하면 시장 전체를 뺏길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측은 “시장이 개방되면 현재로서는 국내 업체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국내 지도 서비스 1위 사업자인 네이버는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간 역차별이 심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 지도 사업자는 공간정보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등에 따른 다양한 사전 사후 규제를 받고 있으나 해외 사업자는 동일 규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차별 방지 방안을 먼저 마련한 뒤 반출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달라진 구글-국제 정세 변수로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속내는 ‘구글 생태계’를 구현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구글은 길 찾기 등 정보 전달과 오락을 접목한 자동차용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서비스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지도에 광고를 표시하거나 특정 위치를 지나는 사람에게 원하는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광고 수익을 내고 있다. 이 밖에도 자율주행차, 드론, 사물인터넷 등 신사업 분야 데이터를 쌓고 실험하려면 지도 정보가 필수적이다.
구글은 지도 반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과거와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16년 당시 구글은 정부로부터 지도 반출 승인 조건으로 위성영상(구글어스) 보안 처리를 요구받았다. 하지만 구글은 “지도 반출과 위성사진 필터링은 별개”라며 “다른 해외 업체도 위성사진을 파는데 구글어스만 필터링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고 지도 반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안 시설에 대한 가림 처리를 하겠다고 하는 등 전보다 유화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달라진 국제 정세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구글은 과거부터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을 통해 꾸준히 지도 반출 거부가 ‘비관세 장벽’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을 상대로도 관세 인상과 비관세 장벽 해소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의 지도 반출 요구 논란이 자칫하면 통상 갈등의 불씨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도 반출 여부는 ‘지도 국외 반출 협의체’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국토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등이 참여한다. 규정상 신청을 받은 후 60일 이내 반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1회에 한해 60일 연장할 수 있다. 이때 휴일, 공휴일은 기간에서 제외된다. 2016년 구글 요청 때는 6월 신청서를 접수했으나 1회 연장된 후 최종적으로는 11월 불허 결정됐다. 이번 신청서는 2월 접수됐다. 구글의 지도 반출 ‘삼수’ 최종 결론은 7, 8월경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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