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중동건설붐 모티브…아뜰리에 에르메스 개인전
미디어 아트 작가 김아영(46)의 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양건설에서 근무했던 작가의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했다. 한양건설이 수주했던 사업 중 하나는 사우디 최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중 하나였던 리야드의 알 마터 주택단지였다. 교민들 사이에서 '한양아파트'로 불렸던 이곳은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면서 '쿠웨이트 아파트'가 됐고 지금은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가 됐다.
김아영 '알 마터 플롯 1991' 스틸 이미지[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는 김아영의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은 이런 작가의 개인사가 모티브가 된 전시다.
신작 '알 마터 플롯 1991'에서 작가는 아파트 건설에 참여한 아버지의 동료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아버지가 귀국할 때마다 들고 왔던 대추야자에 대한 기억, 그림엽서, 현지 주민들과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알 마터 단지를 둘러싼 토막 난 이야기들을 이어 붙여 구성한 영상으로 구현했다.
김아영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 개최 |
이야기는 작가의 개인사에 멈추지 않는다. 한국 건설사들이 중동에 갔던 배경에는 석유 파동에 따른 에너지 위기, 오일머니로 인한 중동의 건설 붐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고 알 마터 단지가 '쿠웨이트 아파트'가 된 데는 걸프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뒤에는 결국 석유가 있다. 작가는 개인사에서 출발해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적 분쟁까지 자연스럽게 한 편의 이야기로 녹여낸다.
과거의 이야기인 이번 작품은 상상의 공간인 다공성 계곡을 소재로 한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이나 미래 가상 도시를 질주하는 여성 라이더를 소재로 한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 등 미래를 다뤘던 작가의 대표작들과는 다소 달라 보인다.
개인전 소개하는 김아영 작가 |
지난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미래를 많이 상상하는 만큼 고대에 대한 연구(리서치)나 신화적인 시간에 대한 관심도 많다"면서 "작업들이 늘 멀리 나가는 만큼 또 닻을 내리는 지점이 먼 과거에 있기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과거 작품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 김아영은 2014∼2015년 석유의 기원과 신화, 석유의 자본화 등 20세기 역사를 석유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3부작 '제페트, 그 공중공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을 선보였다. 이 중 3편은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 신작은 사운드 퍼포먼스 작품이었던 제페트 연작을 10년 만에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작가의 가족 앨범에서 꺼낸 사진과 실사 촬영 영상 등 전통적 기술이 생성형 AI와 게임 엔진 애니메이션 등 첨단 기술과 함께 사용됐다.
김아영 '알 마터 플롯 1991' 스틸 이미지[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작가는 "나는 사실 디지털 세대 이전의 작가"라면서 "내가 가장 특화된 분야는 디지털 네이티브 작가들처럼 컴퓨터 그래픽(CG)이 전면화된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오래된 매체인 영상 매체이고 아직도 영상 편집을 무척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김아영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 개최 |
작가는 올해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바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LG와 구겐하임미술관이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예술가에게 주는 'LG 구겐하임 어워드'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다.
세계 곳곳에서 전시 일정도 빼곡하다. 독일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고 5월에는 영국 테이트모던 25주년 기념전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된다. 10월 홍콩 엠플러스(M+) 미술관 외벽에서 영상 작업을 선보이고 이어 11월에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 개인전과 함께 뉴욕 '퍼포마 비엔날레'에서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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