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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책 한 모금]왜곡과 거짓의 시대…내가 가진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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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2009년 첫 출간한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가 특별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관한 이야기와 특별증보판 서문을 추가했다. 문장도 전체적으로 다시 손봤다.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불변성을 지녔다. 이에 유시민은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고 이 책은 그런 다시 읽기의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죄와 벌', 침침한 스탠드 불빛 아래 엎드려 몰래 읽었던 '공산당 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슴 아픈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한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21세기가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 자유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 '자유론'까지. 유시민 작가는 자신과 현시대가 요구하는 답을 고전에서 찾아낸다. 유시민 작가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가장 많이 표현했다며 애착을 드러낸 책이다.
    아시아경제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 「1장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이 내게 묻는다. - 「2장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유사 이래 인간이 만든 모든 권력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제약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지금 두려움 없이 『공산당 선언』을 읽는 나는 행복하다. 거기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오류를 담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어서다. - 「3장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

    다시 『인구론』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우리 모두는 갖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산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념이 논리적·경험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시험하고 검토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과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맬서스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 「4장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시를 그렇게 좋아할까? 나도 이것을 읽으면 가슴 밑바닥에서 잔잔한 파도가 밀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때 누군가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사는 게 노엽고 슬펐던 조선 민중의 마음을 울렸는지도 모른다. 푸시킨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든, 누군가의 시가 다른 시대 다른 민족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차르의 학정과 일제의 압제는 똑같이 '힘든 날'이며 '슬픈 현재'였다. 우리의 선조들은 푸시킨의 시에서 큰 위안과 격려를 받았던 듯하다. - 「5장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흔히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 「6장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그때 왜 『광장』을 읽었던가. 명성 때문이었다. 조국의 현실과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는 지성인이라면 한 번은 읽어야 할 소설. 『광장』은 그런 명성을 지닌 작품이었다. 그때 내가 이 소설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강한 인상을 받았던 대목들을 챙겨보면서 이제야 깨닫는다. 아하, 그랬구나. 내가 본 것은 반쪽뿐이었구나. 주인공 이명준이 체험한 현대사를 한 측면에서만 보았구나. 작가가 그린 산봉우리를 한 곳에서만 보고 돌아섰던 것이구나. 문화재만 그런 게 아니라 소설의 아름다움도 읽는 이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인가 - 「7장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다. - 「8장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그런데 국 두 그릇을 해치우는 슈호프의 모습은 결코 비천해 보이지 않았다. 장엄하고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나는 이것이 솔제니친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슈호프를 수용소에 가둔 소련의 정치체제와 권력자들에 대해 억누르기 어려운 적개심을 느꼈다. 솔제니친이 독자의 가슴속에 이런 감정이 일어나기를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 「9장 슬픔도 힘이 될까」

    우리는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정보를 숨 쉬고, 왜곡과 거짓을 마시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13장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랑케를 추종하면 인생이 편안해진다. 역사에 진보는 없으며 모든 시대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굳이 새 시대를 열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사는 시대가 다른 모든 시대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살면 그만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우리의 민족사를 비하하고 폄훼하는 역사 왜곡 작업을 추진했을 때, 여기에 협력했던 '진단학회'의 역사가들이 '실증사학'을 내세우면서 랑케를 떠받들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E. H. 카를 읽고 랑케와 작별했다. 내 인생에는 암운이 드리웠다. - 「14장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

    밀은 1859년 그 옛날에 쓴 책에서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어리석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이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15장 21세기 문명의 예언서」

    청춘의 독서 |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356쪽 | 1만89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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