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제돌봄의날을 하루 앞둔 10월28일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봄의 공공성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나 혼자 산다’는 폼나는 라이프 스타일이 말하지 않는 것은 돌봄의 공백이다.
공적 돌봄 없이 나 혼자 살 때 나는 결국 가족에게 사적으로 떠넘겨진 짐이 된다. 돌봄을 감당할 수 없는 가족에겐 ‘돌봄 파산’, ‘영 케어러’(young carer)와 ‘노노(老老) 간병’, ‘간병 살인’과 ‘간병 자살’이란 고단하고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줄줄이 따라붙고, 그 단어들로도 수식되지 못하는 혼자에겐 고독사의 공포가 어른거린다. 누구도 돌봄 없이 살 수 없으나 한국에선 돌봄에 관계된 모두가 불행하다. ‘죽는 것보다 두려운 것이 혼자 늙는 것’인 사회는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속도가 ‘전 지구 선두 주자’인 한국의 당면한 현실이자 시간을 당겨 도래하고 있는 암울한 미래다. 그 현실과 미래는 ‘지우기’와 ‘치우기’란 공법으로 구축돼왔다.
“어느 특정한 시점과 조건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일상의 공간에서 ‘지우기’에 바쁘다. 양육시설이나 요양시설, 복지시설, 병원, 심지어 일부 종교시설에 이르기까지 일상과 분리된 낯선 공간으로 이들의 돌봄 필요를 ‘치우기’가 지금까지의 과정이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이 거대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제목으로 던진 책은 현재 한국 사회엔 ‘잘못된 돌봄의 경제학’과 ‘왜곡된 돌봄의 사회학’과 ‘무기력한 돌봄의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홀로 이겨내고 홀로 일어서고 홀로 자신을 책임진다는 ‘자립 신화’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내에서 “돌봄은 가족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으로 치부되고” 그 공짜 노동의 책임은 주로 여성들에게 떠넘겨진다. 돌봄을 “가족화나 시장화에 의존하게 하지 않고 사회화”하며 “함께 책임지는 일로 만들어온” 선진 복지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과 아동·장애인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도 배제되며 돌봄을 둘러싼 지배 논리를 반박하거나 대안을 내기 어려운 현실만 강화됐다.
“돌봄에 대응하는 사회적 방식과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고통이 줄어”들지만 바뀌지 않는 이유는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라고 책은 지적한다. “의지를 발동”해야 할 해법이자 책 제목의 ‘질문’에 대한 답도 저자들은 부제로 달아놨다.
“지역사회 공공 돌봄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새판 짜기.”
공저자 8명은 문재인 정부가 경기도 화성시와 강원도 춘천시에서 실시한 ‘어르신 통합돌봄 시범사업’(2020~2022)에 참여했던 보건·의료·복지·주거 전문가들이다. 사업을 거치며 해답의 방향과 모델에 공감대를 형성한 그들은 한국의 돌봄 현실을 진단하고 문제의 난맥을 풀 단서를 ‘공공 중심 커뮤니티 케어’에서 찾는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가 l 김진석 외 7명 지음, 헤이북스 펴냄, 1만9800원 |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은 돌봄이 필요한 주민 누구나 낯선 공간의 ‘시설’이 아닌 익숙한 ‘주거 공간’, 즉 ‘집’에 살면서 건강하고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들을 받는 것이다.”
그 ‘핵심’ 위에서 ‘돌봄의 새판짜기’도 출발한다. 저자들은 ‘집에서 늙고 죽을 권리’에 주목하며 그렇지 못한 구조를 분해한다. 노인 대상 설문 조사에서 임종하고 싶은 장소 1위는 언제나 집이지만 2019년 국내 사망자 중 병원에서 눈을 감은 비율은 77.1%(어윤경·고정은 연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였다. 지역사회 돌봄이 빈약해 요양병원·시설에 들어가 생활하다 죽음을 맞는 탓이다. 요양병원 병상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수술·치료 뒤 재활병원으로 옮기고 싶어도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회복기 재활병원(2023년 기준 전국 총 53개)은 강원·전북·제주를 통틀어 1개뿐이다.
“환자 삶의 질보다 각 단계마다 버티고 있는 공급 기관이 자신들의 이익을 좇기 위해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고 정부는 카르텔을 깨기 위한 노력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하면서 “결과는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 돌봄 요양 환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책은 비판한다. 동네 의원 대부분이 의사 1명과 간호사·간호조무사 1~2명으로 운영돼 방문 서비스 역량이 취약한 실태도 제도로 존재하는 방문 진료·간호가 현실에선 거의 작동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원인이 된다. 돌봄이 ‘사적 고통’으로 치부되지 않으려면 돌봄의 주체가 바뀌고 생태계가 재구성돼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돌봄이 필요한 당사자를 떠받치는 기저에 든든하게 자리 잡아야 하는 주체가 국가다. 그 위에 지역사회가 자리 잡고, 그 위에 이웃이, 그리고 다시 가족이 차례차례 안정적인 구도로 위치해야만 정점에 있는 한 사람의 당사자에 대한 돌봄이 완성된다.”
구체적 대안들도 제시한다. 단독개원이 아닌 ‘1차 병원 연합’의 형태로 의료를 수행하며 방문 진료·간호 인프라를 보완하고, 중앙정부가 제도와 재원을 쪼개 관리·통제하는 데서 북유럽 국가들처럼 지방자치단체가 돌봄의 1차 주체가 되는 쪽으로 체제 전환을 주문한다. 돌봄 재정 통합과 돌봄에 알맞은 주거 지원, 마을 공동체의 가능성 등도 모색한다. 헌법재판소의 ‘내란 대통령’ 파면 선고 즈음 서문을 쓴 저자들은 “새로 시작되는 정치와 정책의 장에서 돌봄이 제 위치를 잡아나가길 기대”하며 돌봄의 대전제를 일깨운다.
“돌봄 사회도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비례하여 발전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