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유지하려 ‘우리 사람’에게 관대하지만
집단 평판 해친 ‘검은 양’에 더 가혹해지기도
가치냐 이익이냐, 일탈자에 대한 대응 달라져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열렬하게 응원하는 프로스포츠 선수가 불법 도박에 연루됐다거나, 혹은 데뷔 때부터 광팬이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마약 복용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해 보자. 요즘 상한가를 찍고 있는 확증편향이 작동한다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즉각적 반응은 현실부정일 것이다. “에이, 그럴 리가 없어”라거나 “아마 가짜 뉴스일 거야”. 예상과 달리 객관적인 증거가 차고 넘쳐 혐의가 확정됐다고 치자.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에구,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그랬을까.” 한술 더 떠, “도박이나 마약이 음주운전처럼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대상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유지하기 위한, 소위 ‘동기화된 추론’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우리’ 사람에게 ‘그들’에 대해서보다 더 관대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흔히 찾을 수 있다. 팔은 안으로 굽고, 객지에서는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고 하지 않던가.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을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내집단(ingroup)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본인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outgroup)을 차별한다.
흥미로운 것은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별이 역사적 경험이나 종교적 신념, 정치적 견해나 가치관처럼 의미 있는 기준과 무관한 경우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고전적 사회심리학 실험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에게 화면에 찍힌 점이 몇 개인지 추정하게 하고, 답과 상관없이 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참여자들에게는 점이 정답보다 더 많다고 추측한 집단과 더 적다고 추측한 집단으로 분류했다고 거짓으로 알려줬다. 이후 금전적 보상을 주면서 내집단 구성원과 외집단 구성원에게 포인트를 나눠 주도록 했을 때, 사람들은 그저 같은 집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집단 구성원에게 더 많은 포인트를 배분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내가 속한 집단의 일원을 외부인보다 더 강하게 비판하고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 문화 유적지에 누군가 “철수와 영희 다녀가다” 같은 낙서를 남겼다고 치자.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들의 행태에 더 분개하고 비난하는 것은 한국인들이다.
블랙 시프 효과는 특히 집단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구성원에 대해 나타나기 쉽다. 입회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참이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주변적 구성원에 비해, 소속 집단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고 외부에 해당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집단 구성원들은 그의 일탈 행위에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선 최고위원의 일탈 행위는 총선 직전 영입된 비례대표 위원이나 일개 당원의 일탈에 비해 소속 정당의 이미지에 더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핀토와 동료들이 2010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조직의 핵심 구성원이 조직의 입장을 따르지 않을 경우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한다거나 계속 의견을 고집하면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등의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응답이 많아졌다.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