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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토)

북한은 왜 핵전략잠수함 시꺼먼 밑동만 공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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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당 8차 대회 결정에 따라 추진되는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 실태”를 현지에서 살폈다고 지난 8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보도된 잠수함 건조 현장 사진엔, 잠수함 전체 모습은 감춰진 채 밑동만 보인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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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 실태”를 현지에서 살폈다고 지난 8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수상함(신형 구축함 추정)과 잠수함 건조 현장 사진들을 보면, 수상함은 전체 모습이 보이지만 잠수함은 시꺼먼 밑동만 공개됐다. 왜 북한은 잠수함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2년반 전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야심차게 공개했다 외부 세계의 놀림을 받았던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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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9월8일 조선중앙통신은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을 만들어 진수식을 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전술핵공격잠수함 건조를 ‘주체적 해군 무력 강화의 새 시대, 전환기의 도래를 알리는 일대 사변’이라며 잠수함 전체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이 공개한 김군옥영웅함을 두고 당시 미국 군사매체 ‘워존’은 “프랑켄서브”(프랑켄슈타인 잠수함)이라고 깎아내렸다. 이 매체는 “골동품인 로미오급 디젤 잠수함을 이렇게 기괴하게 개조”했다고 주장했다. 김군옥영웅함은 선체 상부 구조물에 미사일 발사관을 추가하는 등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만큼 크게 뜯어고쳤는데, 이를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에 빗대 꼬집은 것이다.



지난 2023년 9월8일 조선중앙통신은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을 건조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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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옥영웅함은 옛 소련이 1957년 설계한 로미오급 잠수함(1800t) 선체에 미사일 수직발사관을 얼기설기 이어 붙여 3000t으로 덩치를 키웠다. 3000t 잠수함의 미사일 수직발사관이 6개인데, 김군옥영웅함에는 10개의 수직 발사관이 장착됐다. 당시 합동참모본부는 “김군옥영웅함은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 전문가들은 이 잠수함이 기형적 확장을 통해 발사관을 무리하게 늘려 실제 작전 환경에서 미사일을 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김군옥영웅함이 ‘짜깁기 잠수함’이란 혹평을 받은 것은 북한이 핵잠수함 몸통인 선체를 건조할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3000t급 이상 잠수함을 만들려면 덩치만 키우면 되는게 아니다. 상대의 추적을 피해 더 깊이 잠수할 능력(최대작전심도)을 갖추려면, 물의 압력을 견디는 특수합금강인 압력 선체(Pressure hull) 제작 기술이 필수적이다. 디젤 잠수함은 200~300m 심도에서 활동하고, 핵잠수함은 최대 600m 심도까지 내려간다. 잠수함이 100m 깊이에 내려가면 1㎡당 100t의 압력을 받기 때문에, 보통 군함을 만드는 쇠로 잠수함 선체를 만들면 바다 속에 들어갈 경우 선체가 찌그러진 깡통처럼 된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이 “중요 조선소의 함선 건조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셨다”고 지난 8일 보도했다. 북한은 건조 중인 수상함(신형 구축함 추정)의 전체 모습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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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은 수압뿐만 아니라 상대의 어뢰·폭뢰 공격의 수중폭발 압력도 견뎌야 한다. 잠수함 선체는 수압과 폭발 충격을 견디는 특수합금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기계산업·철강산업 기반을 갖춘 나라는 손에 꼽힌다. 국내에선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포스코가 압력선체를 함께 만들었다. 자체 기술력으로 3000t급 이상의 잠수함을 독자 개발한 국가는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러시아, 중국 등 8개국에 불과하다.



핵잠수함 건조는 원자로도 관건이다. 북한은 잠수함이나 수상함 원자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는 지상에 고정돼 있지만, 핵잠수함의 원자로는 상하좌우 기동에도 견뎌야 한다. 뒤집힌 상태에서도 작동해야 하고, 상대의 공격을 받아 방사능이 잠수함 선체에 누출될 위험에 대비한 안전 시설도 갖춰야 한다.



지난 8일 북한이 공개한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은 김군옥영웅함(3000t급)보다 배수량이 갑절 늘어난 6000t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잠수함에 대해 브루스 베넷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 해군 차세대 전략핵잠수함(SSBN) 콜롬비아호를 예로 들어 “미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건조한 경험이 있고 원자로를 잠수함에 맞게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지만 콜롬비아호를 건조하는 게 계획대로라면 8~9년이 걸릴 것”이라며 “북한은 그런 경험과 기술이 없다”고 지난 13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말했다. 영국·프랑스도 핵잠수함을 건조하는데 7~8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난 2023년 9월8일 조선중앙통신은 수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영웅함’을 건조했다고 밝히고 그해 9월6일 열린 진수식에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등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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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잠수함을 만들 돈도 기술도 부족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로 외국 도움도 받기 어렵다. 북한이 지난 8일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을 공개하자, 북한이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소형원자로 등 핵심 기술을 얻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북한 전략핵잠수함에 맞서 우리도 핵잠수함을 만들고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국내 보수 쪽에선 북한이 파병한 병사 목숨값으로 핵잠수함 기술을 받았을 가능성을 사실처럼 여기나, 러시아가 국가 전략기밀인 핵잠수함 기술을 북한에 넘겨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 태평양사령관을 지낸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북한은 외부의 지원 없이 핵잠수함을 건조할 역량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지원한 대가로 러시아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는 추측일 뿐”이라고 ‘미국의 소리’에 말했다.



북한은 2021년부터 핵잠수함 건조를 ‘전략무기 5대 과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북한 핵잠수함 대비책을 세울 때 추측과 사실을 구분하며 접근해야 한다. 북한 핵잠수함이 ‘파병한 병사 목숨값’이란 감정적 단정보다 북한 잠수함의 시꺼먼 밑동의 재질 분석에 집중하는 게 안보에 보탬이 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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