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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전에 SR 있었다…‘아빠 찬스’로 입사한 이들의 최후[법조 Zoom In : 법정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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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사건 어떻게 됐더라?” 할 때 정작 결말을 모르는 경우가 있지 않으셨나요? 사건은 ‘수사기관의 수사나 당사자의 소 제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법원의 판결’로서 끝이 납니다. 사건의 시작과 끝 사이, 법정에선 치열한 사실관계와 법리 다툼이 벌어지고 이 내용이 판결문에 기록됩니다. 법정의 가장 앞자리, 1열에서 사건의 디테일과 결말을 전해드립니다.

수서발 고속철도(SRT).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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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고속철도(SRT) 운영사인 공기업 ㈜SR의 공개채용을 앞둔 2016년 7월. 김복환 당시 SR 대표이사는 인사노무팀장에게 자기소개서 하나를 건넵니다.

“잘 썼는지 검토해 봐라.”

며칠 후 인사노무팀장은 이 자기소개서 초안을 수정해 김 대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면접에서 이 자기소개서의 주인을 만납니다. 지원자 김모 씨, 김 대표의 조카였습니다.

김 씨는 그해 SR 신입 역무원 전형에 최종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약 8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여전히 SR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부정 입사자 탓에 합격권에서 밀려난 피해자만 100명이 넘었던 이 사건. “부정 입사자들을 퇴출시키겠다”던 당시 SR의 약속은 어떻게 된 걸까요? 사건이 벌어진 지 약 8년 만인 올해 초, 이들의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 부정채용 합격자들은 어디에

‘SR 채용비리’는 2015~2016년 SR 임직원들이 신입·경력직 공개채용에서 24명을 부정채용한 것으로 조사된 사건입니다. 이들은 지원자의 친인척으로부터 채용을 청탁받고 직원들에게 점수조작을 지시하는 등 부정채용에 가담했습니다. 당시 대표이사, 영업본부장, 인사노무팀장, 노조위원장 등은 SR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돼 2019년~2021년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죠.

동시에 문제가 된 건 부정채용으로 합격한 이들이었습니다. 2018년 회사 측은 합격자들에게 ‘직권면직’ 처분을 내립니다. 그러자 이들은 “부당해고”라며 노동위 구제신청과 관련 행정소송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행정소송에서 SR 측이 지게 됩니다. 징계해고 절차를 거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 위법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SR 측은 ‘근로계약 취소’라는 카드를 꺼냅니다. 때는 2021년. 당시까지 SR에 남아있던 부정채용 합격자들은 총 9명이었습니다. 약 3년간 해고를 둘러싼 분쟁이 계속되면서 스스로 퇴직하는 등 이탈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SR 측은 이 9명에게 근로계약 취소를 통지하고, “이들에게 SR 근로자 지위가 없음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함께 제기합니다.

●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

현행법상 근로계약은 쉽게 취소할 수 없습니다. 근로자가 경력 위조 같은 사기를 쳤거나, 기업 측에 중대한 착오가 있는 등 아주 이례적인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근로계약 취소는 사실상 해고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엄격하게 보는 것이죠.

SR 측은 이 사건이 ‘착오’에 의한 근로계약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들 모두 객관적이고 공정한 채용절차를 거쳐 최종합격했다’는 착오에 빠져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착오가 없었더라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①부정행위가 있었고 ②SR은 공정한 절차로 선발됐다는 ‘중대한 착오’에 의해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므로 ③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근로자 측은 이렇게 맞섭니다.
“설령 일부 부정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채용절차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므로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았다.

①결과적으론 공정한 채용절차였으니 ②SR의 ‘착오’는 없는 것이고 ③그러므로 ‘착오로 인한 근로계약 취소’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입니다.

● 法, 9명 중 8명은 “근로자 아니다”

2022년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4부(부장판사 정현석)는 9명 중 2명에 대해서만 근로계약 취소가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앞선 김 씨의 사례처럼 부정행위와, 부정행위로 인해 채용됐단 사실이 모두 증명된 2명에 대해서만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이 외에 부모들이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청탁을 했더라도, 그로 인해 채용됐다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7명에 대해선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항소심 판단은 조금 달랐습니다. 올해 1월 24일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윤강열)는 9명 중 8명에 대해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가 중요하게 본 기준은 ‘SR 측이 미리 알았더라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정도로 중대하고 명확한 부정행위가 있었냐’는 것이었습니다. 1심과 달리 ‘부정행위’와 ‘채용’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아닌 것이죠.

항소심에서 유일하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1명은 ‘SR 측이 미리 알았다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정도의 부정행위를 했나?’라는 질문에 ‘그렇게 보긴 어렵다’는 답이 나오는 인물이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의 아버지는 당시 영업본부장에게 “잘 챙겨달라”고 전화를 하긴 했습니다. 다만 A 씨는 처음부터 합격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고, 점수나 순위가 조작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죠. 이에 재판부는 “A 씨 채용에 관해 직접적인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양측은 모두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달 7일 사건을 접수해 심리를 진행 중이죠. 반복되는 ‘채용비리’, 그에 대해 대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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