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법원의 제동 명령에도 베네수엘라 이민자 수백 명의 추방을 단행해 법원 결정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미 대학 내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를 주도한 영주권자 체포 뒤 추방을 추진해 미 수정헌법 1조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 또한 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오래되고 모호한 법률 조항을 무리하게 해석해 이민자 추방에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이하 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발동한 트럼프 대통령 명령에 따라 수백 명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를 추방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추방 규모가 거의 300명에 달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루비오 장관은 추방된 이들이 베네수엘라 폭력단 트렌데아라과(Tren de Aragua·TdA) 조직원이라고 밝혔지만 <AP> 통신은 트럼프 정부가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았고 해당 폭력단 소속이라는 증거 및 이들이 미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엘살바도르 정부 또한 이들의 도착 영상을 공개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추방은 15일 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이 추방령 효력을 정지시키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뤄져 트럼프 정부는 법원 명령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해당 명령을 내린 제임스 보아스버그 판사는 이미 출발한 항공편에 대해서도 "비행기를 돌리는" 수단을 포함해 미국으로 귀환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구두로 명령했다. 보아스버그 판사는 심리에서 "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공중에 있는 경우 미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CNN의 수석 법률 분석가 엘리 호닉은 구두 명령과 서면 명령이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며 백악관 주장을 반박했다. 다만 이미 비행기가 미국 영토를 떠난 상태였다면 "회색 영역"에 접어들 순 있다고 짚었다. 방송은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법원 명령이 나왔다고 전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에 미 법원의 추방령 효력 정지 명령 기사를 인용하며 "앗, 너무 늦었네"라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AP>는 입수한 미 국무부 및 엘살바도르 외무부 문서 등을 통해 엘살바도르가 이들을 1년간 수감하는 대가로 트럼프 정부로부터 수감자 1명 당 2만달러(약 2900만원), 총 6백만달러(87억원) 가량을 받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적성국 국민법은 미 대통령이 전시에 적대국 국민을 추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미국이 프랑스와의 전쟁 위기에 처했던 1798년 만들어졌다. 이 법은 "미국과 외국 정부 사이 전쟁이 선포"됐을 경우, "외국이나 그 정부에 의한 미국 영토에 대한 침략 혹은 약탈적 침입 자행, 시도, 위협"이 있는 경우 등 전시에 대통령에 이러한 권한을 준다.
전문가들은 이 법이 평시에 남용될 수 있음을 우려해 왔는데 브레넌센터는 특히 최근엔 반이민 단체가 이 법의 "침략", "약탈적 침입" 문구를 사전적 의미를 넘어 해석해 이민자 추방에 이용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자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발언을 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이 법을 이용해 이민자를 추방할 것이라고 여러 번 언급했다.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추방에 관한 명령에서 "TdA가 미 영토에 대한 침략 혹은 약탈적 침입을 자행, 시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등 미 시민단체들은 트럼프 정부가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전시 권한을 사용하려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5일 긴급 심리를 통해 14일간 이들의 추방을 막는 임시 명령을 내렸다.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많은 명령을 내렸는데 이 중 많은 명령이 오랜 법적 선례를 무시하고 대통령 권한에 대한 생소한 법적 이론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국무부에서 일한 앤 마리 슬로터는 통신에 "이 시점에서 우리의 많은 동맹국들이 깊이 우려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더 이상 미국을 법치와 민주주의의 등대라고 보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냉전 시대 이민법을 통해 "국가 안보 이익과 외교정책에 반하는" 개인의 영주권이나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조항은 칼릴 뿐 아니라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한 모든 학생에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칼릴에겐 어떤 형사 범죄 혐의도 제기되지 않은 상태다.
루비오 장관은 16일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칼릴이 테러리즘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고 "이들(가자 전쟁 반대 시위대)이 건물을 점거하고 대학을 파괴했다"고 얼버무렸다.
미 시민단체 뉴욕시민자유연맹(NYCLU) 사무총장 도나 리버먼은 CNN에 칼릴 추방 시도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칼릴이 "(정부 관점에서) 잘못된 정치 사상을 갖고 이를 표현했다는 혐의에 근거해" 체포됐다고 비판했다. 리버먼은 이는 "대학을 굴복시키려는 협박 시도"이자 학생과 교수진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1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추방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엘살바도르 테코루카에 위치한 교도소에 도착해 걷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이 베네수엘라 폭력단 조직원이라고 밝혔지만 증거를 제시하진 않았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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