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문화부장 |
“나 맨날 맨날 백 환 줘. 나 물질 좀 안 나가게. 나도 죙일… 내 새끼만 쳐다보고 살아 보게.”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꽤나 여러모로 얘깃거리를 몰고 다닌다. 어여쁘지만 한이 서린 제주 바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지난한 서민들의 삶. 문예 소설을 마주한 듯 찰진 대사까지. 그래도 꼭 하나를 꼽자면 단연 화제의 꽃은 ‘엄마’다. 언제건 어디서건 “폭삭 속았던”(수고 많았다는 뜻의 제주말) 우리네 어머니들을 제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주인공 애순(아이유)의 엄마는 등장만 해도 먹먹하다. 배우 염혜란 씨가 열연한 광례. 그야말로 눈물 버튼이다. 억척스러운, 아니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던 시절. 자식 잘되길 바라며 모든 걸 쏟아붓는 인생. 죽음을 앞두고도 딸내미 입에 먹을 거 넣어 주려는 그 마음. 뉘라서 울컥하지 않을까. 온라인 맘카페에선 “광례 보다가 꺽꺽대고 통곡했다”는 글들이 수시로 이어진다.
실은 얼마 전까진, 맘카페에선 다른 엄마가 뜨거운 입방아를 타고 넘실거렸다. 개그맨 이수지 씨가 연기한 “제이미(Jamie)맘 이소담 씨”다.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지난달 4일 선보인 영상은 이달 18일 기준 조회수 836만 회가 넘었다. 사교육에 열성인 강남 엄마들을 일컫는, 이른바 ‘대치맘’ 패러디. 화제를 넘어 사회적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누군가는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을 적확하게 짚어냈다며 환호했다. 반면 아이의 앞날을 위해 애쓰는 진심을 너무 비꼬았단 지적도 만만찮다.
60년대 초 애순맘과 2025년 제이미맘은 각자의 시공간이 무척 다르다. 60여 년 세월만큼 처한 상황도 동떨어진다. 한데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는 있다. 그 시절 어머니도, 지금 이웃집 엄마도 자식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목숨 걸고 물질하는 해녀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아들 기다리며 운전석에서 김밥으로 끼니 때우는 정성도 폄훼할 순 없다.
그런 맥락에서 12일 개봉한 영화 ‘침범’은 모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난폭한 성향의 딸을 키우는 엄마 영은(곽선영). 갈수록 책임감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그는 자꾸만 혼란스럽다. 영은의 심장을 파고드는 상실감은 숭고한 모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적 일탈일까.
모성이 볼모가 되는 세상
어머니는 위대하다. 모성애는 아름답다. 하지만 사회가, 문화콘텐츠가 그런 엄마의 희생을 영웅화하고 신화화할수록 세상 어머니들은 숨 쉴 틈을 잃어간다. 제이미맘이 입는 바람에 몽클레어 패딩이 꺼려지는, 타인의 시선에 유독 취약한 우리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이미 한국은 육아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켜켜이 쌓이다 못해 문드러지고 있지 않나.
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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