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노리고 '토지 앞→토지 관통' 청탁…설계자에 2억 건넸다 덜미
범죄 들통났지만 '토지 관통' 노선으로 변경…철도공단 "최적 노선"
노선 깃발 뒤로 보이는 타운하우스 단지 |
(춘천·강원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강태현 류호준 기자 = 2027년 개통을 목표로 무려 3조원이 투입되는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 사업이 한창인 가운데 거액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노리고 '노선 변경'을 꾀한 범죄가 일어났다.
보상금을 노린 땅 주인과 보상금 일부를 받는 대가로 결탁한 실시설계 용역회사 소속 노선 설계 담당자의 의도대로 노선이 변경됐고, 이들의 범죄행각은 결국 탄로 나 처벌받았다.
20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약 1만평의 토지를 가진 A(51)씨는 그곳 땅에 타운하우스를 지으며 분양사업을 계획·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토지 바로 앞으로 철도 노선이 지나가도록 계획된 사실을 알게 됐다.
기존 계획대로 철도 노선이 확정되고, 철로가 들어선다면 소음 등으로 인한 땅값 하락은 물론 타운하우스 분양에 악재가 될 게 분명했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노선도 |
고민에 빠져 있던 A씨에게 '노선 변경'이라는 범죄의 씨앗이 싹트게 된 시기는 2021년 10월이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뒤인 2021년 12월 초 A씨는 지인을 통해 B씨에게 "토지 바로 앞으로 노선이 지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토지를 관통해 철도 노선이 지나가도록 설계를 변경해달라"고 청탁했다.
그 대가로 토지수용보상금 30억원 중 10%인 3억원을 B씨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12월 말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A씨는 재차 청탁했고, B씨는 공사 노선도를 보여주며 "토지를 관통하는 방향으로 노선 변경을 검토해보겠다. 좋은 방향으로 진행해보겠다"고 검은손을 잡았다.
적막함 흐르는 강원 고성군 한 타운하우스 |
이들의 범죄 행각은 2024년 2월 첩보를 입수한 강원경찰청의 수사로 낱낱이 밝혀졌다.
경찰은 B씨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두 사람이 노선 변경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증거를 찾아내 그해 7월 A씨와 B씨에게 각각 배임증재와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지만 1심은 "국책사업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현저히 훼손되어 죄책이 무겁다"며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B씨에게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2억원 추징을 명령했다.
피고인들은 "형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판결 이후 A씨는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B씨만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루는 1·2심과 달리 법률심인 데다 형사소송법상 유기징역의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일 때만 양형부당을 주장할 수 있어 상고가 기각될 확률이 매우 높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을 주관하는 국가철도공단 측은 "최종 실시설계 노선은 기본설계와 견줘 노선 선형과 경제성 등에 대해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최적의 노선으로 확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행위로 말미암아 변경된 노선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는 "선후관계가 잘못됐다. 노선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서 확정된 것인데 B씨가 마치 A씨를 위해 노선을 바꿔준 것처럼 이야기해서 돈을 챙긴 것"이라며 "노선 변경과는 별개인 B씨의 일탈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공터에 타운하우스만 '덩그러니' |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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