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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토지보상금 10% 줄게"…동서고속철도 노선 변경 꾀한 땅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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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노리고 '토지 앞→토지 관통' 청탁…설계자에 2억 건넸다 덜미

범죄 들통났지만 '토지 관통' 노선으로 변경…철도공단 "최적 노선"

연합뉴스

노선 깃발 뒤로 보이는 타운하우스 단지
(강원 고성=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지난 17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타운하우스 단지 옆 소나무 숲에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노선 지점이 표시된 깃발이 꽂혀 있다. 이 타운하우스가 조성된 땅의 소유주는 토지수용보상금 30억원 중 10%를 떼어주겠다며 실시설계 용역회사 소속 노선 설계 담당자에게 '노선 변경'을 청탁하고 2억원을 건넨 사실이 발각돼 처벌받았다. 2025.3.20 taetae@yna.co.kr


(춘천·강원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강태현 류호준 기자 = 2027년 개통을 목표로 무려 3조원이 투입되는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 사업이 한창인 가운데 거액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노리고 '노선 변경'을 꾀한 범죄가 일어났다.

보상금을 노린 땅 주인과 보상금 일부를 받는 대가로 결탁한 실시설계 용역회사 소속 노선 설계 담당자의 의도대로 노선이 변경됐고, 이들의 범죄행각은 결국 탄로 나 처벌받았다.

20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약 1만평의 토지를 가진 A(51)씨는 그곳 땅에 타운하우스를 지으며 분양사업을 계획·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토지 바로 앞으로 철도 노선이 지나가도록 계획된 사실을 알게 됐다.

춘천에서 속초까지 93.7㎞를 연결하는 동서고속화철도는 총 8개 공사 구역으로 나뉘어 사업이 진행되는데, 그중 고성과 속초가 포함된 8공구 노선이 A씨 토지 바로 앞으로 지나가도록 기본설계가 이뤄졌다는 사실이었다.

기존 계획대로 철도 노선이 확정되고, 철로가 들어선다면 소음 등으로 인한 땅값 하락은 물론 타운하우스 분양에 악재가 될 게 분명했다.

연합뉴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노선도
(춘천=연합뉴스) 2027년 개통을 목표로 무려 3조원이 투입되는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 사업이 한창인 가운데 거액의 토지수용보상금을 노리고 '노선 변경'을 꾀한 범죄가 일어났다. 사진은 사건이 일어난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의 기본설계 노선(파란색)과 범죄의 영향으로 바뀌었을 개연성이 의심되는 실시설계 노선(빨간색)을 표시한 노선도. 2025.3.20 [국가철도공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onanys@yna.co.kr


고민에 빠져 있던 A씨에게 '노선 변경'이라는 범죄의 씨앗이 싹트게 된 시기는 2021년 10월이다.

타운하우스 인근에 현장 조사를 나온 8공구 실시설계 용역회사의 상무이사 B(55)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회로 8공구 노선 설계 담당자가 B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뒤인 2021년 12월 초 A씨는 지인을 통해 B씨에게 "토지 바로 앞으로 노선이 지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토지를 관통해 철도 노선이 지나가도록 설계를 변경해달라"고 청탁했다.

그 대가로 토지수용보상금 30억원 중 10%인 3억원을 B씨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12월 말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A씨는 재차 청탁했고, B씨는 공사 노선도를 보여주며 "토지를 관통하는 방향으로 노선 변경을 검토해보겠다. 좋은 방향으로 진행해보겠다"고 검은손을 잡았다.

이후 A씨는 2022년 2월 9일과 3월 2일 각 현금 1억원씩 총 2억원을 B씨에게 건넸고, 그 사이 기간인 2월 22일 외부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철도 노선은 A씨의 뜻대로 '토지 앞'에서 '토지 관통'으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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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함 흐르는 강원 고성군 한 타운하우스
(강원 고성=연합뉴스) 류호준 기자 = 지난 17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타운하우스가 텅 빈 채 적막함이 흐르고 있다. 이 땅의 소유주는 토지수용보상금 30억원 중 10%를 떼어주겠다며 실시설계 용역회사 소속 노선 설계 담당자에게 '노선 변경'을 청탁하고 2억원을 건넨 사실이 발각돼 처벌받았다. 2025.3.20 ryu@yna.co.kr


이들의 범죄 행각은 2024년 2월 첩보를 입수한 강원경찰청의 수사로 낱낱이 밝혀졌다.

경찰은 B씨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두 사람이 노선 변경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증거를 찾아내 그해 7월 A씨와 B씨에게 각각 배임증재와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지만 1심은 "국책사업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현저히 훼손되어 죄책이 무겁다"며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3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하고, 사회봉사 300시간을 명령했다.

B씨에게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2억원 추징을 명령했다.

피고인들은 "형이 무거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판결 이후 A씨는 상고하지 않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B씨만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루는 1·2심과 달리 법률심인 데다 형사소송법상 유기징역의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일 때만 양형부당을 주장할 수 있어 상고가 기각될 확률이 매우 높다.

두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사실상 마무리된 셈이지만, 철도 노선은 A씨 토지를 관통하는 방향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을 주관하는 국가철도공단 측은 "최종 실시설계 노선은 기본설계와 견줘 노선 선형과 경제성 등에 대해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최적의 노선으로 확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행위로 말미암아 변경된 노선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는 "선후관계가 잘못됐다. 노선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서 확정된 것인데 B씨가 마치 A씨를 위해 노선을 바꿔준 것처럼 이야기해서 돈을 챙긴 것"이라며 "노선 변경과는 별개인 B씨의 일탈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연합뉴스

공터에 타운하우스만 '덩그러니'
(강원 고성=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지난 17일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8공구 지점인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공터에 타운하우스 단지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땅의 소유주는 토지수용보상금 30억원 중 10%를 떼어주겠다며 실시설계 용역회사 소속 노선 설계 담당자에게 '노선 변경'을 청탁하고 2억원을 건넨 사실이 발각돼 처벌받았다. 2025.3.20 taetae@yna.co.kr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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