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0개 의과대학 총장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계를 반려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을 것으로 알려진 19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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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사회정책부장
봄이 와 나른할 만한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은 잠시겠지만 구치소에서 나오고, 돌아오라는 의대생과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그대로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 관저로 손을 흔들며 돌아오는 모습은 죄가 하나도 없다는 태도다. 1년 넘게 의료 현장과 학교를 비운 전공의나 의대생 사이에선 여전히 ‘억울하면 의대 오지’ ‘나중에 아프면 와서 (살려달라고) 할 것’ 등의 말이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는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싸워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자, 정부는 사과는 물론 정책 후퇴까지 감수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3월에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이달 내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양보에도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가 2천명의 의대 정원 증원을 충분한 논의 없이 불쑥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 등으로 지역·필수 의료 강화를 위한 증원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필수의료 수가 인상, 지역의사제 등 다른 대책이 무르익지 않은 채 증원만을 내세우면서 의료계의 반발을 자초했다.
하지만 의료 공백이 1년이 넘어가면서 그 투쟁 역시 정당성을 잃은 지 오래다. 최근엔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이 돌아오지 않는 제자들을 향해 “오만하기 그지없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봤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수련 과정은 ‘착취’라고 하는 주장에 “피해자는 지난 1년 동안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 가족들”이라고 했다. 착취에 대해선 “자영업자 75%는 월수입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삶이 보이기는 하냐”고 일침을 놓았다.
의료 공백에 따른 환자 피해가 상당하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의료 공백으로 인한 초과사망이 최대 3136명(2024년 2~7월)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물론 지난해 3~10월 초과사망자가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았다(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연구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암 진단을 받고도 수술 날짜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환자의 불안함이나 출산을 앞두고 제대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산모의 고통은 통계에 담겨 있지 않다.
정부가 하나둘 양보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은 내년도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세워진다. 2027학년도부터 추계위가 의사 규모를 계산하는데, 위원 절반 이상은 의사 쪽 전문가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지만, 의대 정원 규모가 의사 단체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환자 단체와 시민단체가 “무엇을 위해 1년 이상을 견딘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의료계는 최종 결정권마저 달라고 하고 있다.
과거에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진료는 유지하며 여론을 살피는 염치는 있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도 2018년 펴낸 보고서에서 “해외 의사들은 단체행동을 하더라도 필수진료를 병행한다. 한국 의사들도 부득이하게 단체행동을 할 경우 필수진료는 제공하면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동료에 대한 존중은 물론 국민의 건강권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의협은 탄핵 선고 이후에나 자신들의 입장을 내겠다고 한다. 동시에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돌아간 동료들을 향해 비난과 신상 공개를 서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일방통행을 ‘전체주의’라고 비판하던 이들이 그에 못지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제 양보할 것도 없고 더는 양보해서도 안 된다. 시민의 건강권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더 물러났다가는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다가올 4월이 잔인한 달이 될지, 수련병원과 학교에서 봄날의 햇살을 누릴 수 있는 달이 될지는 그들의 자율적 판단에 달려 있다.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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