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내릴 때 됐다”에서
“금융권 스스로 투기 차단”으로
하나·우리, 강남3구·용산 주담대 제한 검토
정부, 서울시 오판 불만 현장서 은행이 감수
대출 상담받던 소비자들 불확실성도 커져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나서면서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의 문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상가 내 부동산에 3월 기준 아파트 거래가격 현황 자료가 부착돼 있는 모습. [헤럴드경제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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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은행도 대출금리를 내리는 것이 정설인데 가계부채 관리를 다시 강화하라고 하면 은행으로서는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한 시중은행 은행장)
지난 한 달간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와 재지정이라는 정책 번복이 나타나면서 은행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당국이 대출금리를 낮출 때 됐다고 강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 집값 상승 이유로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재차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즉각적으로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문턱을 높이는 방안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부 은행의 경우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취급 제한을 해제한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규제를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서울 일부 지역에 한해 유주택자의 주담대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 있는 주택을 대상으로 주담대를 막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권의 이러한 즉각적인 움직임은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금융당국은 지난 17일 주요 은행을 불러 모아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대출 확대 흐름을 지적했고 이틀 뒤인 19일 자율관리 강화 추진 계획을 밝혔다. ‘자율관리’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자체 규제 도입을 통한 대출 억제를 압박한 것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전날 부동산 관계기관 회의를 마친 뒤 “투기적 수요가 있는 것은 금융권이 스스로 차단하도록 정부가 요청했다”며 “올해도 (지난해와) 유사한 조치를 일단 1단계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잘 안되면 추가적인 강력한 대출 억제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추가 대출 규제 가능성도 시사했다.
최근 가계부채 급증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성급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시장을 자극했다는 데 이견이 적다. 정부와 서울시도 정책적 오판을 시인했다.
특히 연초부터 대출금리를 인하하라고 압박해 온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 강화 주문에 은행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 수요가 늘어나는 당연한 논리를 거슬러 대출 취급을 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등을 타깃으로 하는 규제에 대한 소비자 불만 등도 은행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는 대출을 통한 내 집 마련을 계획해 온 금융소비자의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갭투자를 투기 수요라고 규정했지만 전세를 낀 주택 매입은 서민의 주거 사다리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라고 하는데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범위에서는 대출을 타이트하게 막기 어렵다. 사실상 금리를 올려 안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정부가 금리는 내릴 여지가 있다고 하는 상황이지 않냐”면서 “대출은 상담부터 실행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는데 규제가 시시각각 바뀌면 고객 입장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은행 신뢰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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