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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일)

트럼프 불확실성 시대의 생존법 [여한구 글로벌 호라이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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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지난 3일 콜로라도주 볼더에 위치한 국립해양대기청(NOAA) 밖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NOAA의 인력 감축에 항의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최고의 기후과학 연구·측정 기관인 국립해양대기청에서 800여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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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무소불위와 혼돈의 워싱턴

트럼프 2기 취임 100일의 반을 지난 워싱턴은 기존 질서를 뒤엎고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하루에도 폭풍처럼 쏟아지는 과격한 정책들, 쫓아가기도 바쁜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충격과 혼돈의 연속이다. 거의 24시간 계속되는 뉴스 사이클에 미 언론들도 번아웃(Burnout)되고 싱크탱크도 조변석개(朝變夕改)식 트럼프 정책과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고 분석하느라 하루가 다 간다.

워싱턴은 연방 정부 주도의 경제이다 보니 한두 단계 거치면 가족, 지인 중에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정부효율부에서 해고 이메일을 받았다는 사례를 접한다. 미 국제개발처(USAID) 해체뿐 아니라, 항공우주국(NASA), 국립보건원(NIH) 등 유수 연구소들의 과학자 연구인력들이 대량 해고되고 있다. 기초 과학기술 분야 예산이 대폭 삭감되며, 진보 자유주의의 산실로 인식되는 엘리트 대학들의 기부금에 대한 과세 폭증이 추진되다 보니 미국의 지식사회 저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워싱턴은 항상 주택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부동산 불패의 시장인데 고용의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주택 매물이 쏟아져서 몇개월 전 내 놓은 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동료들이 주변에 보인다.

최근 이곳의 싱크탱크들은 향후 4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에 대한 전략 회의를 많이 한다. 치열한 갑론을박의 논쟁 끝에 나온 결론은 매일 쏟아지는 트럼프의 발언 하나 하나에 주목하고 일일이 대응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트럼프 하루살이로 바람을 쫓다 4년을 보내다 보면, 보다 중장기적, 전략적인 정책 본연의 미션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발언을 “심각하게는(seriously)” 받아들이되, 액면 그대로(liberally) 듣지는 말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비단 싱크탱크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업 및 정부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일 것이다.

불황(recession)? 아니면 해독제(detox)?

최근 캐나다, 멕시코 관세 위협, 정부효율부의 무차별 해고, 삭감 등의 혼란이 계속되자 월가의 주식시장이 계속 하락하면서 미국 경제의 불황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지난 1월 취임식때만 해도 대규모 감세의 연장, 파격적 규제완화 등의 기대감에 힘입어 경제에 낙관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급격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클린턴 행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는 관세 등 경제정책의 극심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황의 가능성이 50:50에 가까와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월가 헤지펀드 출신인 베센트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가 과다한 정부지출 의존에서 민간 주도로 “해독”하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조정과정일 뿐이라 일축했다. 과연 이것이 미국 경제의 “해독” 과정일지, 아니면 불황으로의 “중독” 과정일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다음의 세가지 측면에서 불황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첫째, 당초 예상보다 훨씬 자의적이고 강력한 관세, 재정 정책이 초래하는 극심한 불확실성이다. 기업들은 투자를 보류하고 있고 소비자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물가가 오른다는 우려에 월마트, 델타항공 등 소비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 감세 관련 의회의 예산협의과정이 늦어지며, 정부지출의 대폭 축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1기에서는 감세와 규제완화 등 경기 확장적 조치가 먼저 이루어져 경기가 상승하는 국면에 관세가 부과되어 그 부정적 효과가 최소화되었는데, 2기에서는 이 순서가 거꾸로 되어 훨씬 큰 규모의 관세가 먼저 부과되니, 그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머스크 주도 정부효율부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광범위한 정부의 기능과 인력을 없애면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특히, 트럼프 1기때는 주식시장 하락시에는 정책 기조를 바꾸면서까지 시장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과는 달리, 트럼프 2기는 미국 경제의 장기적 번영을 위해 단기적인 고통은 참아야 한다는 확신을 보이며 주식시장의 등락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것도 시장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미국 우선주의(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의 배경과 목표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트럼프 2기가 단기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미국 경제를 “해독”하려고 하는 이유, 그리고 그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하루 하루 트럼프 노이즈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전제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미국 정치에는 각 시대를 관통하는 사조가 존재한다. 1861년 미국 남북전쟁 후 1930년대까지는 대체로 자유방임적 보수주의 사조가 미국 정치를 지배해 왔다. 그러다,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구질서가 무너지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등장해 뉴딜 등 큰 정부와 확장적 정부정책으로 시대의 사조가 바뀌어 그후 반세기 정도 지속된다.

1980년대 들어와 미국민들은 지나치게 커진 정부의 비효율성에 회의를 느끼던 중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레이건 대통령을 선택했고 역사의 추는 다시 작은 정부, 시장중시, 규제 완화로 흘러 대체로 클린턴, 오바마 정부까지 지속된다. 그러다 2016년 당선된 트럼프는 과거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와 선명하게 선을 긋고, 보호무역, 제조업 재건, 미중 패권경쟁 등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중심에 내세웠으나, 2020년 재선 실패로 역사의 이단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 훨씬 더 강하고 체계화된 트럼프 2기로 돌아오며 이 MAGA가 새로운 시대의 사조로 4년 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트럼프 MAGA의 세계관에서 보면 지난 반세기간 지속되어 왔던 세계의 외교, 안보, 경제, 통상, 금융의 기존 질서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remake)”것이 목표다. 제2차세계 대전 이후의 브레튼우즈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는 미국이 자유진영의 리더로서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냉전체제 하에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경제적으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자유무역, 다자주의를 적극 포용하며 미국이 만들어 낸 세계 질서다.

그러나 전후 세계 경제 GDP의 반을 차지하던 미국 경제가 지금은 25퍼센트로 축소되면서 경제력이 예전만치 않은데다, 미국 GDP의 1.2배에 달하는 부채가 쌓였고 매년 지출되는 이자부담만도 국방비를 초과해 더이상 지탱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동서부의 해안과 중서부의 내륙간 부익부 빈익빈은 트럼프 당선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된 미국인들이 많은데, 전후 미국의 마샬플랜 등 대규모 경제지원으로 잘 살게 된 유럽의 NATO 방위비를 미국이 지난 반세기동안 더 많이 지출해 왔다는 것은 MAGA 지지자들한테는 현실을 도외시한 구질서에 빠져있는 엘리트층들의 무지와 독선일 뿐이다. 게다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포함 유럽의 방위를 위해 엄청난 돈을 쓰는 동안, 유럽은 수십년간 러시아로부터 값싼 가스를 수입하며 러시아를 잘 살게 만들어 주고, 그 러시아산 가스로 고급 자동차 등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며 돈을 벌어온 것이다.

경제통상 분야에 있어서도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시에 미국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하게 되면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수렴하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중국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며 중상주의적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체제를 통해 고속성장을 구가했고, 14억 시장이 갖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제, 첨단기술 등에 있어 미국의 턱밑까지 쫒아오게 된 것이다.

이 역시 그간 엘리트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나이브한 생각과 잘못된 판단으로 미국 중서부의 중산층과 제조업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WTO 체제는 자유민주 시장경제 체제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은 국가주도형 모델로 WTO 체제 하에서 불공정하게 번영해 온 것이고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없기때문에, 이제 미국은 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 다자체제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힘을 앞세운 양자적 정글의 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외교 안보 경제 통상 정책의 근저에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존재적 위협요소와 함께 그간 낙오된 미국인들보다 해외의 잘사는 나라들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던 엘리트들의 오류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이러한 과거 시대의 구질서를 완전히 “뜯어고치고(remake)” 말 그대로 중산층 미국인들이 중심에 있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4년후 어떤 행정부가 들어오던간에, 반세기간 풀뿌리에서 쌓여온 불만과 분노가 터져 ‘트럼프 MAGA’라는 형태로 새로운 사조의 물꼬가 트인 이상 다소간의 조정은 있을지라도 큰흐름은 이렇게 갈 수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팔아야

비가 오면 모두가 다 맞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는 비 오면 어떡하나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 비 오면 어떻게 우산을 팔까 궁리하는 사람, 이미 우산을 만들어 놓고 비 오면 달려나가 팔 준비를 하는 사람 등이 있는 법이다. 트럼프 2기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지만, 캐나다, EU의 경우 이 트럼프발 위기를 그간 국내적으로 하지 못했던 것을 이루는 기회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캐나다는 수출의 80퍼센트를 미국에 의존하다 보니 아무리 인접한 우방국이라도 경제의 과도한 집중이 국가의 존립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하다. 미국제품 불매운동, 국산품 사용운동이 벌어지고,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EU에 가입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다변화할 수 있는 할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EU는 미국과의 나토 방위조약이 흔들리면서 EU 공동의 재원으로 1500억 유로를 조성 방위비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도 헌법상 적자 재정의 요건을 완화해 방위비 지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제는 잘 안 팔리는 자동차 대신 탱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미 민주당 정부하에서는 EU가 계속 미국에 의존하려는 관성이 작용했을텐데, 트럼프야말로 80여년간 EU가 국내정치적으로 할 수 없었던 “홀로서기”를 해 낼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제공해 준 것이다. EU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때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트럼프의 갈라서기로 해 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EU는 세계 제2차대전 종전, 소련의 몰락 등 지정학적 충격을 통해 더 강해져 왔는데, 이번의 위기도 그에 못지 않게 EU가 더 강해질 수 있는 지정학적 위기이자 기회인 것이다. 브렉시트로 손상되었던 EU와 영국의 관계가 이번에 회복의 전기를 마련한 것도 덤이라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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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장기적 선택

향후 4년을 넘어서 상당기간 우리가 알아왔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상당부분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트럼프 MAGA가 지향하는 바가 얼마나 반영될 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현기증 나는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상대적 게임”이라는 것이다. 비가 오면 모두 맞아야 하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트럼프 2기 하의 미국과도 우리 제조업 분야의 윈윈 파트너쉽 등 기회가 존재한다는 점은 과거 몇차례 기고에서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는 중장기적으로 새롭게 판이 짜여질 세계 질서하에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될 부분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20:80의 원칙을 기억하자.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약 20퍼센트에 못 미친다. 미국에의 수출이 마치 99퍼센트인듯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는 이 80퍼센트에 해당하는 부분이 계속 늘어날 수 있고, 늘어나야 한다. 특히, 트럼프 2기가 과격한 관세 부과를 확대해 나갈수록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간의 무역은 증가할 것이다. 특히 중국 기업들은 향후 4년간 미국 시장 진출이 어려워짐에 따라 이 나머지 시장들에 대한 적극적 공략에 나설 것이고, 4년후에는 세계 곳곳에 중국기업들의 글로벌화, 현지화가 크게 진전되어 있을 것이다. 늦으면 우리 몫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빨리 움직여 이 80퍼센트의 시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아세안, 인도 등 신남방 정책의 복원이 필요하다. 이 지역은 미중 패권경쟁의 잠재적 승자로서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기지를 옮기며 떠오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대 아세안 투자는 2014년부터 이미 중국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2024년의 우리의 수출액 규모도 아세안과 인도를 합치면 19.4퍼센트로 1위인 중국(19.5퍼센트), 2위인 미국(18.7퍼센트)에 버금가는 수준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인태전략을 바이든 행정부가 계승했고, 바이든 행정부의 광물안보파트너쉽(MSP)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계승했다. 정파를 떠나 국익에 중요한 중장기 전략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트럼프2기에 들어와서 한국과 일본간 전략적 이해관계가 더욱 일치하고 있다. 미국통계 기준 무역적자액(한국 64억달러, 일본 66억달러)도 비슷하고, 철강, 자동차 등 잠재적 관세대상 품목,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조선, 원자력 등도 이해가 겹친다. 유럽은 독일과 프랑스가 합쳐지니 그나마 대미 협상력이 생긴다. 한국과 일본도 많은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지만 지금의 혼돈하에서는 상호 협력을 통해 더욱 파이를 크게 할 수 있다. 양국 모두 고령화 저출산 등 내수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만큼, CPTPP를 통해서 일본과 더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관계를 맺는 것도 검토할 때이다. 이제는 우리가 동등한 협력 파트너로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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