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부산 범어사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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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설립됐지만 1919년 3·1운동 참가와 만세 사건을 일으켰다고 해 강제 폐교된 사립학교가 부산에 있다. 1906년 설립돼 1919년 폐교됐다가 1926년 불교전문강원으로 개원했다가 또다시 1943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강제 폐원돼 사라진, 부산 범어사 내 있었던 ‘명정학교’다. 지금 그 자리는 범어사 ‘율원(律院)’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억상자 순회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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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자락 범어사에는 광복 80주년, 3·1운동 106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임시정부-기억상자’ 순회전이 열리고 있다. 국립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과 공동 주최로 4월 13일까지 전시회가 있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백용성 선사, 임시정부의 고문이었고 범어사 주지로서 3·1운동을 지원한 오성월 선사, 1911년 범어사 등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했던 만해 한용운 선사, 한용운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범어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킨 김법린 스님 등 알만한 이름의 스님들이 범어사와 연을 갖고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범어사 경내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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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암 부근의 바위샘인 ‘금샘(金井)’은 금정산 이름 유래와 범어사 창건설화, 그리고 절 이름 탄생 배경을 담고 있는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명소다. 언제나 금빛 물이 고여 있고 바람이 불면 파장이 일어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노니는 것 같다고 해 지어진 이름인데 금샘의 물이 마르면 큰 재앙이 온다고 전해진다.
선찰(禪刹) 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조계문. 금정산 범어사(金井山梵魚寺),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편액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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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는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이다. 통도사, 송광사, 해인사, 수덕사, 동화사와 함께 2012년 조계종 6대 총림 중 하나인 ‘금정총림’으로서 영남권의 대표 사찰이다.
범어사 청룡암 시석. 동래부사를 역임한 이안눌(1571~1637년) 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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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가 조선 반도에 화엄종을 전하기 위해 열 개 사찰(華嚴十刹)을 창건했는데, 범어사는 그중 하나로 신라 문무왕(678년) 때 창건했다고 한다. 범어사는 화엄십찰(교종사찰) 중 하나였는데 근대불교 개혁운동과 항일운동을 전개한 오성월(1865~1943년) 스님이 당시 봉건 질서 타파와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선불교 운동을 전개하면서 선종 사찰이 됐다. 성월 주지 스님은 금강암 선원, 내원암 선원 등 선원 개설을 주도해 선찰 대본산의 격을 갖추고 선종중앙교당·선학원·선리참구원 등을 창설해 선풍 진작을 주도해 1910년 한국 불교 선종 수사찰로 인정받았다. 성월 스님은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인 당대 최고의 고승 경허 스님(1849~1912년)을 조실로 초빙해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이라고 명명하고 많은 선승을 배출한 수행 사찰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게 했다.
범어사 주지 정오 스님(왼쪽)과 정원주 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헤럴드·대우건설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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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소장하고 있다. 조선 초기 1394년 간행본으로 권4와 권5를 한 권으로 묶은 책으로, 현존 본 중에서 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국유사 책 모양을 본떠 만든 범어사 기념품 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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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 중이라 볼 수는 없었는데, 정오 주지 스님께서 삼국유사 책 모양을 본떠 만든 범어사 기념품 상자를 보여주신다. 이 책에 들어있는 ‘의상전교(義湘傳敎)’에는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을 창건하는 내용과 이 가운데 금정산 범어사가 들어 있음이 언급돼 있다.
대웅전 앞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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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문을 지나면 일직선상에 천왕문과 불이문, 보제루가 비탈길과 계단 길로 이어져 있고 여기를 지나면 너른 황토마당이 나온다.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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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건물로 보물 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앞마당인데, 이곳에는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정형화된 통일신라시대 석탑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4m 높이의 보물 250호 삼층석탑이 있다. 앞마당 다른 한편에는 당간지주와 석등(石燈)이 우뚝 서있다.
대웅전과 양옆에 있는 관음전, 지장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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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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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의 가장 상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대웅전이다. 그 왼쪽에 관음전과 일로향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지장전과 한 건물에 들어있는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그 옆에 산령각이 있다.
천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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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의 중심에는 보제루가 있고 좌우에 종루, 선원, 미륵전, 승가대, 설현당 등이 있고, 하단의 중심은 천왕문이다. 범어사는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가 돼 동래성의 함락과 함께 모두 불에 타서 광해군 5년에 중창되는 아픔을 겪었다.
호국사찰 범어사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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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마지막 방어선 진지를 구축했던 부산이었기에 범어사는 산문을 개방하고 ‘순몰장병들을 위한 유해안치소’ 역할을 했다. 인근 양산 통도사는 다친 군인들을 받아들여 치료하는 야전병원 역할을 했다. 승려들은 밀려드는 시신을 직접 화장하고 안장하는 일을 도맡아 했고, 범어사는 전쟁이 끝나고 1956년 국군묘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임시 국가현충원의 역할도 묵묵히 수행했다. 국난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산문을 열었던 범어사는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최근에야 ‘국가 현충 시설’로 인정받았다.
범어사는 올해 3·1운동 기념식을 봉행하고 순국선열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기렸다. 3·1 만세운동과 일제하 독립운동 현장에 부산 불교계와 범어사 명정학교가 있었다.
범어사는 창건설화에서부터 호국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신라시대 때 왜구들이 자꾸 쳐들어와 괴롭히자 왕이 의상대사를 청해 금정산 아래에서 기도하게 했더니 왜선들끼리 서로 공격해 왜군 병사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이에 왕은 의상대사를 통해 범어사를 창건하게 됐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라고 해 산 이름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했고 그곳에 범어사(梵魚寺)를 건립했다고 한다.
범어사 경내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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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와 관련해 전해온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도인들이 대성암 입구에 나뭇가지를 꽂아뒀는데 그것이 자라 느티나무가 됐고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이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려고 하다가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쳐서 왜병 20명이 즉사했다는 이야기다. 범어사가 왜적 퇴치라는 호국불교 성격으로 세워진 호국 사찰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인 듯하다.
금정산성 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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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에 이르는 국내 산성 중 가장 긴 규모인 금정산성(옛 동래산성)이 범어사를 둘러싸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에 1703년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했는데 범어사에서 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계곡 등산로에 많은 등산객이 지나고 있었다. 금정산성 뒤편에는 산성을 지키기 위해 스님들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하고 관리했던 국청사가 지금도 있다. 산성을 짓는 과정과 지키는 과정에서 범어사 스님들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호국사찰의 인연이었을까. 부처님 당시부터 전해져오는 불교 수행법 중 하나인 선무도(금강영관)를 양익(1934~2006년) 스님이 수련법을 체계화해 창시하고 범어사 청련암에서 전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불교 무술로서 선무도의 총본산은 경주에 있는 골굴사로서 한국의 소림사로 불리고 있다.
하마비와 조계문
조계문 인근에 위치한 하마(下馬)라고 새겨진 선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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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문 가기 직전 왼쪽에 ‘하마(下馬)’라고 새겨진 조그마한 선돌이 눈에 띈다. ‘말에서 내려라’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왜 범어사 산문 입구에 있을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조선시대 유생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남용해 신성한 사찰을 유원지나 공원으로 생각하고 말을 타고 법당 마당까지 들어와서 거드럭거렸다고 한다.
보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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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지체 높은 유생들에게 말은 못 하고 하마비를 세워 말에서 내려 걸어오게 했고 일주문(조계문)과 누각(보제루)을 낮게 지어 자연스럽게 한 번이라도 인사하게 했다.
마당에서 본 보제루. 금강계단 현판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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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이 부처님 전에 절을 하거나 인사하는 법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에 누구나 이 문을 통과하려면 머리를 숙여야 법당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승려들이 겪었던 고충이 깃든 하마비를 지금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등나무 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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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초입 주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6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자생하는 등나무 군생지가 있다. 해마다 5월경 보라색 등꽃이 필 무렵에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볼 수 없는 화려한 풍경을 연출해 예로부터 그 경치를 등운곡(藤雲谷)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범어사는 여름에는 수국이요, 가을은 단풍의 명소이다.
600년 된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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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길을 끼고 있는 돌담에 걸린 단풍을 모습을 담는 범어사 포토존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경내에 지름 6m가 넘는 600년 된 황금빛 은행나무의 웅장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범어사 소개 그림책 ‘금빛 물고기의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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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3월이라 꽃들이 펼치는 범어사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오는 길에 주지 스님이 주신 범어사 소개 그림책 ‘금빛 물고기의 선물’을 펼쳐본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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