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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미국 경제의 핵심 원칙이었던 강달러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흔들리고 있다. 1994년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은 "강한 달러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천명한 이후, 미국 정부는 이를 경제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강달러가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불공정한 무역 환경을 조성한다고 주장하며 약달러를 선호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약달러 정책이 기축통화(reserve currency)로서의 달러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위상이 흔들리면, 미국이 누려온 금융 패권에도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강달러를 지켜야 하는 글로벌 금융 논리와, 약달러를 원하는 미국의 무역 전략이 충돌하고 있다. 이 구조적 모순은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로 불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이 딜레마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트리핀의 덫'에 걸린 미국
반대로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이려면 달러 공급을 축소해야 하지만, 이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 달러가 부족해지면서 경제 불안정성이 커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달러 강세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탈산업화를 부추긴다며 약달러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달러 강세를 '통화 문제(currency problem)'라고 지적하며, 미국이 불공정한 경쟁에 놓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가 지적한 '통화 문제'에 대해 일관적이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약달러 정책을 주장하면서도,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등 신흥국들이 탈달러화를 시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즉, 미국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약달러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기축통화 지위를 지키기 위해 강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상반된 입장을 동시에 취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보호무역의 역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적자를 줄이고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율의 관세 부과 등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달러 강세를 유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관세가 부과되면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 소비자들은 해외 제품 대신 국내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외국 통화 수요를 감소시키고, 상대적으로 달러 강세를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무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환율과 금융시장까지 포괄하는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보호무역으로 인한 단기적인 달러 강세 효과를 상쇄하고, 궁극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은 2024년 11월, 트럼프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지명한 스티븐 미런(Stephen Miran)이 발표한 논문에서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외신들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상을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와 비교하며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고 명명했다.
'마라라고 합의'가 말하는 트럼프의 진짜 의도
스티븐 미런은 논문에서, '지속적인 달러 고평가가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통적인 정책 수단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안보와 무역정책을 결합해, 동맹국들이 국채를 구매하도록 압박하며,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고, 미 국채 보유 외국인에게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그는 100년 만기 국채 발행과 같은 일부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이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전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비앙코에 따르면, 트럼프 경제팀의 핵심 목표는 무역과 금융을 연계해 미국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부채 구조를 조정하는 한편, 관세 정책을 활용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달러 가치를 낮추며, 차입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는 약해졌지만, 성장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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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20~25%의 일괄 관세(캐나다∙멕시코 적용 유보), 철강·알루미늄 25% 관세에 이어 상호 관세 조치까지 확대하며 무역 전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상호 관세 조치는 단순한 관세 부과를 넘어 산업 보조금, 환율 정책까지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며, 무역과 금융, 안보를 연계한 협상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우 종전 협정에서도 안보 지원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접근 방식이 무역 정책에도 적용되고 있다.
각국의 맞대응이 이어지며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 흐름이 불안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과도한 보호무역이 글로벌 교역을 위축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웰스파고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S&P 500 지수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고, 기업 순이익과 GDP 성장률 전망을 낮췄다.
OECD 역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며, 무역 장벽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 경제 성장률도 무역 갈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올해 전망치는 기존 대비 0.2%포인트 낮아진 2.2%, 내년에는 1.6%로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달러도 빠르게 약세로 전환되었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강세를 보이던 달러는 3월 들어 급격히 하락했다. 달러 인덱스는 1월 13일 110에서 3월 103대로 하락했으며, 달러-엔 환율도 1월 10일 158.85엔 고점에서 3월 140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이는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시장의 경기 침체 우려를 키우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반영한 결과다.
도전 받는 달러 패권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 패트릭 하커는 3월 6일 연설에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이미 달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그 지위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다.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면 미국 국채가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돼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국채를 무역과 안보 협상 카드로 활용한다면, 미국 국채의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달러는 오랜 기간 동안 '곧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을 비웃어 왔다. 기축통화로서 뚜렷한 대안이 없고,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미 국채의 유동성은 여전히 달러를 떠받치는 핵심 요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스티븐 미런의 '마러라고 합의'에서 제시된 방식대로 약달러 전략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정면으로 시험하는 도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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