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성과 없이 끝나 버렸지만 20년 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였던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는 옳은 정책이었다. 또다시 기회가 찾아오는 듯하였는데 2020년 이후 중국이 홍콩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게 되면서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로 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역시 아직까지 별 소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화와 밸류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금융산업이 가야 할 방향이다.
현실적으로 금융산업의 국제화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세금 문제에 있다. 소득이 높은 외국 금융업 종사자들은 소득세가 낮지 않은 한국으로 올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외국인만을 위해 세율을 낮추기도 어렵다. 내국인·외국인 간 소득세 차별은 금융산업 국제화를 추진하는 일본과 중국도 조심하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금융산업의 국제화를 그냥 포기하여야 할까?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 광물과 농산물의 한국·중국·일본 통합 상품거래소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많은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따라 들어오고 우리나라 금융산업도 같이 발전할 것이다. 금융산업 종사자가 크게 늘어나는 점도 또 다른 이점이다. 마음대로 상상만 해본다면 우리나라에 한·중·일 통합 주식거래소나 채권거래소를 유치한다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식과 채권 거래소에는 아직 각국의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2010년 호주와 싱가포르의 증권거래소가 합병을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호주 국회의 반대로 무산된 적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영토에 세 나라의 통합 광물·농산물 상품거래소를 설립하는 것은 중국과 일본이 경제적 효용과 자존심 사이에서 양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장기적으로 반도체와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노령화로 약해지는 우리 경제에서 금융산업의 국제화는 필수적이다. 역동적인 자본시장은 끊임없이 혁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청년들이 선망하는 괜찮은 직업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3국 간 과거사 문제와 외교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여야 한다.
통합 상품거래소의 또 다른 경제적 이익은 환율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중·일은 원자재 거래에서 미국 달러를 사용하고 있는데 통합 상품거래소가 원화, 위안화, 엔화를 기반으로 거래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환율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 일본은 상대국에 통합 상품거래소를 두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기회가 있다.
우리나라에 위치하는 한·중·일 통합 상품거래소의 상상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는 이유는 우리 정부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외교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김세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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