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엔 샤너히(Seanchai)라는 음유시인이 있다. 옛이야기를 가득 품은 그는 아일랜드 전역의 마을을 떠돌다 저녁이 되면 적당한 농장 부엌을 찾았다. 부엌의 장의자가 그의 공연장 겸 잠자리였다. 샤너히가 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러면 그는 아일랜드의 전설과 민담을 들려주었다. 노래와 함께 사람들 가슴엔 예부터 내려온 지혜와 기억, 세계의 비밀과 인생의 신비가 메아리쳤다. 사람들은 역사와 한 몸이 되었고, 아이들은 자연과 하나로 엮였다.
아일랜드 식물학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의 '세계숲'(아를 펴냄)에 나오는 이야기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임을 배우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에서도, 뭇 생명과 공생하는 자연에서도 독불장군은 서서히 약해진다. 세계라는 숲에서는 "아무것도 밖에 있지 않고", 각각은 "전체를 초월하는 하나 속에 있는 모든 것"으로 존재하는 까닭이다.
세계라는 숲에선 무엇도 특권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명체 하나하나는 거대한 공생의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예외 없이 얽혀 있다. 이 책은 참나무, 산사나무, 딱총나무 등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나무들을 재료 삼아 자연과 우리가 어떻게 하나이고, 숲을 살리는 게 왜 우리를 살리는 일인지를 알려준다.
가령, 나무의 성호르몬을 지베렐린이라고 한다. 가지 끝에서 꽃눈을 밀어내고 열매맺이를 유도하는 수용성 호르몬이다. 나무를 대량으로 벌목하고 가공할 때 지베렐린은 녹아 물로 들어간다. 우리가 먹는 물엔 이 호르몬이 존재한다. 마시면 몸에 쌓여 후대로도 전해진다. 전체 인간 배아의 3분의 1에서 발견될 정도다. 그런데 나무와 달리 인체에서 지베렐린은 통제 불능의 화학작용을 유발해 시스템을 교란한다. 숲이 망가지면 우리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무는 우리 마음에 고요를 돌려주고 우리 정신이 평안을 누리게 하며 우리 영혼을 치유한다. 지난 3월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 날'이었고 조만간 식목일도 다가온다. 기후 재앙의 시대다. 작은 묘목 하나를 마련해 세계 숲에 이바지하는 삶을 실천하면 어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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