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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일)

[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 ⑬] 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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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부서 회식에 국장이 참석했다. 3차는 노래방이었다. 국장은 '바우고개'를, 부장은 '귀국선'을 불렀다. 노래 두 곡에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까지의 역사가 비장하게 흘러갔다. 분위기를 바꿔 보자는 말씀과 함께 지명된 나는 헬로윈의 '어 테일 댓 워즌트 라이트(A tale that wasn't right)'를 불렀다. 분위기가 더 썰렁해졌다. 이후 폭탄주만 돌았다.

나이 들면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많다. 그 시절 국장과 부장의 무반응은 그 노래를 몰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젊은 날의 나는, 많은 젊음들이 그러하듯 '로커'를 자처하며 살았다. 소음을 고음이라 우겼고, 로버트 플랜트와 이언 길런, 롭 핼퍼드를 피하지 않았다. 시나위와 김경호도 종종 찾았다. 술과 노래는 같은 스피릿(Spirit)이라 믿었다. 춤 대신 에어기타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쉰 살이 넘어서부터는 그러지 못한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쏟아진다. 에어기타의 기타줄인 갈비뼈와 복근은 뱃살에 묻힌 지 오래다.)

노화는 한동안 해왔던 것을 못하게 만든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여기'에 적었듯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가'야 하기 때문이겠다.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저서 '노년'에서 인간의 노쇠는 '세포조직들의 부정적인 변모' 때문이라고 했다. 슬그머니 진행되던 노화가 어느 순간 선을 넘으면 그 사람은 생리학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노인'이 된다. 80세 이후에는 거의 모든 노인들이 낮에 반수 상태로 졸게 된다.

노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먼저 회피 혹은 부정. 일단 나와 상관없다고 선을 긋고 보는 것이다. 그룹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1943년생, 1964년 데뷔)는 젊었을 때 "마흔다섯 살이 되어 새티스팩션(Satisfaction)을 부르고 있을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큰소리쳤다. 45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런데 여든이 넘어선 요즘에도 펄펄 뛰며 그 노래를 부른다. 작년에도 월드투어 콘서트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다른 하나는 수용이다. 여기에는 최대한 뒤로 늦추겠다는 지연작전도 포함되는데, 멀리서 보면 오십보백보다. 수용은 다시 비관적 태도와 낙관적 태도로 나뉜다.

오스트리아 작가 장 아메리는 전자에 속한다. 그는 저서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속절없이 늙어가는 사람에게 그 쇠락을 두고 '귀족과 같은 우아한 체념'이라거나 '황혼의 지혜' 혹은 '말년의 만족'이라는 말 따위로 치장해 위로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굴욕적인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저항과 체념 사이, 죽음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거다.

다른 한편의 시선은 긍정적, 희망적이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콜레트 메나주 같은 경우다. 그녀는 저서 '노년예찬'에서 노년을 죽음을 앞둔 몇 년의 기간으로 정의하는 대신 '행복한 장수'의 상당한 기간으로 보자고 했다. 이 기간에는 젊을 때와 달리 무엇을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주어진다. 의무적 관계에서도 해방된다. 인위적 가식, 연극, 유혹도 필요 없다.

다시 노래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록 부르기를 포기했는가. 아니다. 절정의 고음 직전까지, 1절 혹은 도입부까지만 부른다. 에어기타 대신 벨리드럼(Belly-drum)을 친다. 손에 쥔 마이크로 배를 두드리면 그럴듯한 베이스드럼 소리가 난다.

노래를 부르는 방식을 그렇게 바꿨다. 그 덕분에 가장 좋아하는 부분, 절정 앞에서 멈춰도 그럭저럭 괜찮음을 알게 됐다.

[김영태 아케이드 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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