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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월)

예비군이 왜 부끄러워야 합니까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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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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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교훈 | MBC저널리즘스쿨 4기 학생



서울 서초구 반포2·3동대 소속 5년차 예비군이다. 며칠 전 작전계획 훈련을 위해 집 근처 주민센터를 찾았다. 이번 교육은 반포한강공원에서 한다고 했다.



“지금 민감한 시기인 만큼, 주변에서 여러분께 뭐하냐고 물으시면 오해사지 않게 예비군 훈련 중이라고만 말씀하세요.”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려던 찰나, 예비군 동대장은 마이크를 붙잡고 신신당부한다. 나라 지키려고 교육받는 예비군이 왜 오해를 산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원에 나가보니 동대장이 한 말은 현실이었다. 걸음을 내딛는 모든 길이 가시밭길이었다. 군복을 입고 엠(M)16 소총까지 든 군인을 목격한 사람들의 눈길이 따갑다. 빤히 바라보는 외국인과 노부부, 손가락질하는 초등학생의 눈동자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자존감도 공원 아스팔트를 나뒹구는 새카만 낙엽처럼 힘없이 바닥을 헤맨다.



내란수괴가 잘못 겨눈 총부리는 애꿎은 예비군을 향하고 있다. 현역 군인은 오죽할까. 구치소에서 풀려나 싱긋 웃는 군 통수권자 윤석열, 옥중 편지로 밥 먹듯이 내란 선동하는 국방부 장관 김용현 대신 수많은 군인들이 죗값을 치르고 있다. 청춘을 바쳐 나라 지키는 청년의 어깨에 돌덩이를 얹는 대통령은 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독재자들은 언제나 군을 가지고 놀았다. 육군 소장 출신 대통령들은 군을 ‘애완견’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짖으라면 짖었고, 물라고 하면 물었다. 위계질서가 만든 수치스러운 역사다. 그 참혹한 역사에 윤석열씨는 정점을 찍고 말았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더니, 부동시로 병역 의무를 면제받은 윤석열씨도 군 출신 못지않았다. 군인을 장난감 병정으로 아는지, 스무살 청년을 급류에 집어넣은 것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일로 사단장을 자르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진상을 조사하던 수사단장은 항명죄를 뒤집어썼다. 괜히 대통령 마누라가 “총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건데”라며 경호처 가족부 직원들을 들들 볶았다는 말이 나올까.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그동안 쌓아온 군의 자부심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신뢰를 다시 쌓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병역 의무를 다하는 청년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은 죄가 없다.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민주주의 역행으로 군 이미지에 먹칠한 자가 죄인이다.



“나는 국군통수권자로서 여러분들을 전쟁에 출정하도록 명령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쟁 안 나도록 하는 게 대통령 일이라던 노무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차디 당찼던 그가 참 그리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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