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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의 부상과 추락...화려했던 여정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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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록 발란 대표 ⓒ플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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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다가온 위기는 종종 가장 화려했던 곳에서 시작된다. 2017년, 한 데모데이에서 처음 발란을 마주했을 때 그들의 비전은 선명했다. 유럽 현지 명품 오프라인 부티크와 전 세계 쇼퍼들을 연결하는 럭셔리 패션 마켓플레이스. 그 단어들이 가진 매력은 분명했고, 그들의 성장 그래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다.

그 시작은 거의 모든 성공한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보였다. 명확한 비전, 빠른 실행력, 그리고 차별화된 가치 제안. 발란은 당시 한국 시장에서 보기 드문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서 자리매김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들의 성장세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2021년 891억 원이라는 매출 정점은 그들의 화려했던 여정을 증명하는 기념비와도 같았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우상향 그래프가 영원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발란의 성장 신화는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쿠팡과 같은 거대 이커머스의 명품 시장 진출은 발란에게 강력한 도전이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소비 패턴, 명품 시장의 침체, 그리고 아마도 내부적인 성장통까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란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졌다.

2023년, 자본총계 마이너스 77억 원이라는 숫자는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2024년, 그 수치는 마이너스 180억 원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영업손실 72억 원, 부채 규모 약 300억 원. 이 차가운 숫자들은 한때 화려했던 성장 신화의 이면을 보여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발란이 이러한 위기 신호를 인식하고도 취한 대응이었다. 구조조정이나 비용 절감 대신, 그들은 중고 명품, 리빙, 키즈, 컨템포러리 패션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쿠폰 발행도 계속했다. 마치 출혈이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 셀러들의 판매대금 수백억 원을 정산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2017년 그 데모데이에서 펼쳐 보였던 비전과 지금의 현실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 유럽의 부티크와 전 세계 쇼퍼를 연결하겠다던 그 원대한 포부는 어디로 갔을까? 어쩌면 그 비전 자체가 너무 컸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실행 과정에서 무언가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일까?

발란의 이야기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깊은 교훈을 남긴다. 빠른 성장과 화려한 비전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 재무적 건전성과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적절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최형록 대표의 입장문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기업 가치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경영권을 내려놓는 조건까지 감수"했다는 말에서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피해를 복구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셀러들의 판매대금, 투자자들의 700억 원 이상의 투자금. 이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형록 대표가 "차주부터 대면 소통을 시작으로, 실질적인 변화와 해결을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한 만큼, 그들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성공 스토리만큼이나, 위기 극복의 과정도 값진 교훈을 준다.

2017년 데모데이에서 보여주었던 그 빛나는 비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어둠 속에 있지만, 발란이 진정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다시 한번 빛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럭셔리 패션의 세계는 화려함 뒤에 냉혹한 비즈니스 현실이 존재한다. 발란의 여정은 그 두 얼굴을 모두 보여주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비전보다는 현실적인 해결책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발란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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