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중국 베이징 외곽 마쥐차오 인력시장엔 하루 일감을 찾으러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60위안(3만2천원)짜리 아직 있어요. 160위안짜리 아직 있어요!”
지난 27일 새벽 5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에 외침이 이어졌다. 중국 베이징의 최대 인력시장 마쥐차오. 최고 기온 30도에 가까운 날들이 이어지다 3월 말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일감을 찾는 사람들은 몸을 잔뜩 웅크렸다. 하루짜리 일감을 찾는, 저소득 노동자들이 모인 이곳엔 중국 정부가 연일 선전하는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경기’의 증거는 찾기 어렵다.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날이 선 눈빛이 쏟아졌다. 2~3위안(400~600원)짜리 작업용 장갑을 팔던 상인은 “지금 남은 사람들은 일을 아직 못 찾은 사람들이라 기분이 안 좋아요. 사진을 찍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라고 충고했다.
일감을 갖고 인력시장을 찾은 사람들 주위로 노동자들은 모여들었지만, 일당 이야기를 듣고는 이내 실망하는 눈치들이 역력했다. 거리에 선 사람이 “180위안(3만6천원)이에요, 어때요?”라고 일자리를 홍보하자, 한 노동자는 “반일짜리요?”라고 물었다. “하루 일당, 추가 근무는 없고!”라는 답이 돌아오자, 마뜩잖아하던 노동자는 “내가 하겠다”며 일터로 떠났다. 날이 밝아오자, 하루를 공친 노동자들은 1위안5전(300원)짜리 큰 바오쯔(찐빵)를 베어 물고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청소 도구가 담긴 가방을 둘러멘 리우(가명)씨는 “이제 하루 200위안(4만원)짜리 일자리는 거의 볼 수가 없어요. 지난봄까지만 해도 드물게라도 있었는데…”라고 했다.
경제 규모 세계 2위인 중국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중국이 1960년대 초 대약진운동으로 인한 기근과 경기 침체 이후 50여년 만에 3년 연속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올해 초 글로벌 투자은행(IB) 이코노미스트 1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올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평균값이 -0.2%였다고 보도했다.
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는 명목 지디피를 실질 지디피로 나눈 값으로, 경제 전반의 물가 가늠자로 쓰인다. 2010년대 평균 3.4%를 기록했던 중국의 지디피 디플레이터는 2023년 -0.6%였고, 지난해엔 -0.8%를 기록한 것으로 투자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의 2년 연속 디플레이션 지속도 1998~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박진오 한구수출입은행 상해사무소 소장은 지난 25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중국전문가포럼에 중국 당국이 2020년 부동산 시장 건전성 제고 정책을 시행한 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소비, 투자의 위축이 회복된 국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0~60%라고 알려졌다.
디플레이션 딜레마는 중국의 가장 큰 숙제다. 자산은 줄고, 경기가 불안하자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물가는 내리막길이다. 매출과 이윤이 줄어든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일자리와 임금을 줄인다. 그렇게 소비자들의 지갑은 다시 얇아지고, 경기는 나선형으로 침체한다. 중국 인공지능(AI) 업계가 인재 부족을 겪으면서 수억원 연봉 일자리가 즐비하다지만, 일부에 한정된 이야기다.
일자리와 임금 감소는 당장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겨울 직장을 잃은 자오(가명·27)씨는 “회사 매출이 줄어 지난해 월급이 두번이나 줄었다. 베이퍄오(北漂·베이징에 이주해 온 노동자)로 살아가기엔 월급 7천위안(140만원)은 너무 적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버텼지만 결국 회사는 인원 감축에 들어갔고, 평범한 사무직이던 자오씨는 온라인 임시직 구인란에서 하루 일감을 찾아 살아간다. 지난 21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2월 학생을 제외한 16~24살 청년 실업률이 전달보다 0.8%포인트 올라 16.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두달 연속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국 도시 실업률은 전달보다 0.2%포인트 상승한 5.4%로, 2023년 2월(5.6%)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실직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서비스업도 만만치 않은 사정이다. 차량 호출 앱 디디추싱의 운전사로 일하는 샤오마오(가명)씨는 “하루 13~14시간을 일하지만, 하루 벌이는 몇년 전보다 줄어 500위안(10만원)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하도 많은 사람이 이 업종에 밀려들어 가격 경쟁이 심해졌다”고 했다. 기업들 사정도 그의 벌이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예전엔 야근하고 밤 9시 넘어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교통비를 지원받아 저녁 시간엔 좀 돈벌이가 됐는데, 이제 기업들이 야근을 줄여서 그런 손님도 드물다”고 푸념했다.
중국 정부는 디플레이션 딜레마 깨기에 사활을 걸었다. ‘전방위적인 국내 수요 촉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소비 보조금 확대, 임금 체계의 개선,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 대출 금리의 인하 등의 카드를 꺼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5일 진행한 소비 확대 정책 관련 특별 기자회견에서 문화, 관광, 건강, 의료 등 면에서 새로운 고급 서비스 소비 시장을 확대하는 ‘중국 쇼핑’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꽁꽁 언 소비심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샤오훙수 등엔 젊은 세대들이 저마다 생활비 절약 비법을 공유하고, 한달에 1천위안(20만원)도 쓰지 않았다는 체험기를 올린다. 최근 중국 유통업계에서 화두는 ‘특가 할인점’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해 11월 펴낸 ‘사례로 이해하는 중국 소비 트렌드’는 경기 침체 속 중국에서 할인 소매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표 할인 소매점 가운데 핫맥스(Hotmaxx)는 2020년 시장 진출 뒤 2024년까지 전국 98개 도시에 9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은 유통기한이 다가온 ‘떨이 상품’을 원래 판매가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소비 수준이 높은 곳으로 알려진 베이징의 싼리툰에도 핫맥스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6일 찾은 이곳엔 0.5위안(100원)짜리 과자와 음료 판매대가 눈에 띄었다.
경제학자들은 중국 정부의 소비 진작 정책엔 한계가 분명하다고 비판한다. 베이징대학 광화경영대학의 금융학 교수이자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선임연구원인 마이클 페티스는 “가계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계 소득의 증대가 우선해야 하고, 여기엔 기업과 정부의 손실이 뒤따른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소득 증대와 소비 확대의 선순환을 위해선 정부가 강력한 분배 정책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는 이런 결정이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짚었다. 가계 소비의 약세는 중국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중국 중앙재정경제위원회 사무국의 한원슈 부국장은 지난 23일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 학술대회에서 “중국의 소비가 국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낮고, 선진국과의 격차는 20%포인트”라고 말했다고 중국 경제매체 이차이는 전했다. 이 자리에서 류차오 베이징대학 광화경영대학 학장도 “중국 소비의 상대적인 약세는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낮은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업무보고를 하며 ‘소비’를 31번이나 강조했다. 연일 중국 신화통신과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 관영언론은 이구환신(새것으로 바꾸기) 정책 등 소비 보조금이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봄철 여행 수요가 늘어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쓰촨성 충칭에서 구직 활동 중이라는 중국의 한 누리꾼은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젊은 세대라서 부모 세대보다는 소비에 관심도 많고, 돈을 쓸 의향이 있어요. 그런데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말에게 자꾸 달리라고 하는데, 풀은 주지 않네요.”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지난 27일 새벽 중국 베이징 외곽 마쥐차오 인력시장에서 청소 도구를 챙긴 노동자들이 일터로 떠나고 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26일 중국 베이징 싼리툰의 할인 소매점 핫맥스에 100원짜리 과자들이 판매대에 놓여 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