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교역 등 첫 지목, 입법 동향까지
세율 발표 뒤 새 협정 근거 활용할 듯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달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외국산 자동차 대상 25% 관세 부과 포고문 서명 자리에 배석해 있다. 이날 서명은 미국 워싱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이뤄졌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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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의 ‘비관세 무역장벽’을 총망라한 보고서를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국가별 맞춤형 상호관세 발표를 이틀 앞두고서다. 세율 인상 근거와 향후 새 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살뜰히 챙긴 업계 요구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한국 등 59개 교역 상대국의 대(對)미국 무역장벽들을 꼼꼼히 정리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보고서)를 공개했다.
근 40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한국 관련 부분은 7쪽이다. 각각 48, 34쪽에 달하는 중국이나 유럽연합(EU)은 물론 11쪽인 일본에 비해서도 적은 양이다.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상호 교역 물품 대부분에 대한 관세가 폐지됐다는 사실이 명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할 때 시정 요구가 늘었다. 우선 국방 분야 ‘절충교역’이 처음 무역장벽으로 지목됐다. 절충교역은 외국에서 1,000만 달러(약 147억 원)가 넘는 무기나 군수품, 용역 등을 구매하는 경우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에게서 기술 이전이나 부품 제작·수출, 군수 지원 등을 받아 내는 교역 방식이다. 가령 미국으로부터 거액을 주고 최신형 전투기를 구매하며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위한 레이더 기술 이전을 약속받는 식이다.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를 막는 장벽이 강화됐다는 인식도 반영됐다. 반도체, 자동차, 로봇공학, 항공 부문 등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기술이 대상이 될 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외 반출 가능성을 이유로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사용을 불허한다고 보고서가 소개했는데 역시 새로운 문제 제기였다. 투자 제한과 관련, 원자력발전소의 외국인 소유가 금지돼 있다는 언급도 처음 나온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벽을 거론한 것도 이번 보고서 특징이다. 해외 콘텐츠 공급자가 한국 인터넷서비스공급자(ISP)에 네트워크 망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다수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됐다고 지적하거나, 미국 업체가 표적이 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고 문제 삼는 식이다.
한미 FTA 대체 가능성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보고서)’의 표지. USTR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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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말까지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상대로 USTR이 제출하는 NTE보고서에 이런 식으로 업계 요구가 십분 반영되는 게 이례적이지는 않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까지 감안해 책정한 각국 상호관세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날이 이틀 뒤인 4월 2일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보도자료에서 “트럼프만큼 미국 수출업자들에게 해로운 외국 무역장벽을 의식한 대통령이 없었다”며 “그의 지도하에 불공정하고 상호주의에 반하는 관행을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미뤄 보고서에 포괄된 비관세 장벽은 일단 미국이 나라마다 다른 세율로 부과할 상호관세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제시될 수 있다. 또 맞춤형 관세 발표에 이어질 교역 상대국과의 양자 무역협정 협상 때도 압박 수단으로 다시 쓰일 전망이다. 대미 무역흑자가 큰 한국이 상호관세 부과를 피하기 어렵다고 보면 기존 한미 FTA 대체가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고, 그럴 경우 한국의 협상 목표는 장벽을 가급적 덜 낮추며 세율을 최대한 내리는 게 될 공산이 크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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