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 주역…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이끌었던 유 전 본부장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깊게 관여하고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와 직접 채널이 닿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곧 미국과 협상 타결국 나올 것
한국 서둘러야…늦어지면 불리
트럼프와 직접 소통 채널 중요
정부가 나은 여건 만들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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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일문일답.
“굉장히 세다. 다만 이번 상호관세 발표는 협상의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모든 주요국 장관이 워싱턴에 가서 미국과 양자 협상을 도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말에 일희일비할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쌀 관세 50%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숫자다. 미국산 쌀 수입 쿼터 물량 내에서는 관세가 5%에 불과하다. 그런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다만 빌미를 준 한국 정부의 환경 관련 자동차 규정 등 비관세 장벽은 우리도 이 기회에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 게 좋다.”
- 한·미 FTA는 이미 무력화된 건가.
“완전히 무력화됐다. FTA 협상 당시 미국은 1만1000개 품목, 한국은 1만2000개 품목 하나하나를 두고 5년 내 관세 0%로 할지, 7년 내 0%로 할지, 소수점 단위 숫자로도 엄청 치열하게 협상했다. 하루아침에 관세율이 25%가 됐다. 트럼프는 FTA를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FTA 핵심 의무사항을 형해화한 것이다.”
“그러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한·미 FTA 재협상은 국회 비준과 공청회 등을 거쳐 법적인 시간이 소요되는 절차다. 게다가 지금 미국과 협상하고 싶어 하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주요국 통상 장관들은 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나 상무장관을 만나려 할 텐데, 굳이 많은 시간과 공이 드는 FTA 재협상을 요구하겠나.”
- 한국은 어떤 협상 목표를 세워야 하나.
“세계화 시대는 이제 끝났다. 미국이 문을 닫고 요새화하고 있다. 톨게이트를 막아놓고 요금을 낸 국가만 미국 시장에 들여보내 주겠다는 식이다. 지금 우리가 얻어올 수 있는 건 미국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하는 것이다. 정부는 유럽이나 일본 기업보다 한국 기업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관세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전체 패키지딜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미국보다 작아서 하나하나 파편적으로 협상하면 우리 카드가 별 게 아니게 된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여주기 위한 미국산 에너지 구매 계획, 자동차 환경 기준·관련 규정 개선,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첨단산업 제도협력 등을 패키지로 미국에 제시해야 한다.”
- 미국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개방 문제도 거론했다.
“한·미 FTA는 이미 미국에 가장 유리한 소고기 시장을 열었다. 미국이 일본, 중국보다 한국에 더 많이 소고기를 수출한다.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있기에 여기까지 온 거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를 개방하면 한국 내 미국산 소고기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농민단체, 농촌을 지역구로 둔 미 의회 의원들에게도 이런 점을 잘 설득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미국산 원유 등 다른 에너지 수입을 늘려서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면 모를까, LNG 개발 투자는 현 정부뿐만 아니라 다음 정부까지 이어지는, 장기간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이다. 그 사업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과연 사업성이 있는지, 미국 정부는 그 대가로 어떤 지원이나 약속을 하는지 세부 내역을 철저히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
- 협상의 적기는 언제인가.
“미국 내 물가 상승 등으로 상호관세에 대한 우려는 고조되고, 수십개 국가와 동시다발적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성과는 부진한 시기 등에 협상안을 제시하면 실제보다 몇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다만 느긋한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몇주 내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이 나올 거다. 협상이 늦을수록 앞서 타결한 국가들이 제시하는 기준이 기준점이 돼서 미국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높은 조건을 요구할 수도 있다.”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못하고 있는데.
“정상 간 케미스트리(사람 사이의 호흡)라는 게 있다. 정상 간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면 실무 협상에 큰 도움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땐 한·미 FTA 협상 세부 내역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2기 땐 다르다.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깊게 관여하고 직접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채널이 닿는 게 중요하다.”
- 2018년 한·미 FTA 재협상 당시 트럼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내심이 짧은 편이다. 판을 뒤엎으려 할 수도 있다. 보통 FTA 1차 협상을 하면 2차 일정을 한두 달 후에 잡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2~3주 단위로 답을 달라고 재촉했다. FTA 개정 2차 협상이 거의 끝나갈 때는 ‘협상이 길어지니 폐기하겠다’고 해서 양측이 다시 속도를 낸 적이 있다. 그렇기에 협상의 시계가 돌아가기 전 한국 정부가 모든 시나리오별로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면 우린 저렇게 하겠다고 점검해야 한다. FTA보다 관세 협상이 더 절박할 수 있다. 당장 관세가 부과되면서 협상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관세 조치를 발표하면서 준 기간이 며칠 안 된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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