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향 기대… 강행 확인 뒤 소멸
“韓·日 우선”… 양보 협상 홍보 심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워싱턴 국립건축박물관에서 열린 공화당의회위원회(NRCC) 만찬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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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끝내 전 세계에 상호관세 폭탄을 던졌다. 한국엔 25%, 중국엔 무려 104%의 핵폭탄급 관세가 떨어졌다. 트럼프발(發) 세계 무역 전쟁의 신호탄이 솟아오른 날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세계 경제 침체 가능성은 더 커졌다.
중국 관세 실질 세율 125%
대(對)미 무역 흑자 국가 57곳에 적용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별 상호관세가 예정대로 미국 동부시간 9일 0시 1분(한국시간 오후 1시 1분)을 기해 발효됐다. 미국과 교역하는 거의 모든 나라가 대상인 10% 기본관세 시행(5일)에 이어서다. 한국산 제품에 미국이 매기는 관세의 세율은 25%로 올라갔다.
전 세계가 주목한 나라는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이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 미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의 기업들이 공급망을 갖고 있으므로 양국 간 무역 전쟁은 전 세계적 경제 침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로 얼어붙은 금융시장에선 이미 1930년대 무역 전쟁과 대공황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2일 공표한 34%에서 84%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올 초부터 중국에 추가 부과된 관세의 누적 세율은 104%에 이르게 됐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유지했던 평균 21% 관세를 더하면 미국의 대중(對中) 실질 평균 관세율은 125%나 된다.
괘씸죄다. 중국은 미국의 새 관세 계획이 공개되자 동일하게 34% 관세를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관세를 50% 더 추가하겠다고 위협하자 중국은 즉각 10일부터 똑같이 미국산 상품에 50%를 더 추가한 84%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전방위 반격에 나섰다.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미국 군수기업 6곳 추가 △미국 12개 기업에 대해 이중용도 물자 수출 통제 △50% 추가 관세조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비(非)관세 조치도 확대했다.
“200만 명 추가 실업”
비관적 시나리오의 실현에 미국 뉴욕 증시는 또 추락했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이날까지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다.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의 피해가 컸다. 4거래일 하락 폭이 23%에 달한다. 생산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당시 관세를 피해 베트남과 인도, 말레이시아 등으로 공장을 분산했지만 이번엔 이들 국가도 높은 상호관세율을 받았다. 국제 유가도 폭락했다.
불안 무마 시도했지만
8일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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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만에 자산이 급감한 월가 갑부들이 줄지어 항의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 의지를 비치며 달래려는 모습을 보이긴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세 강경파에 밀려나 있었던 월가 출신 협상파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다시 전면에 등장시킨 것을 투자자 무마 의지로 평가했다. 베선트 장관은 8일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약 70개국이 관세 협상을 요청해 왔다며 “그들이 탄탄한 제안을 갖고 협상에 나선다면 좋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7, 8일 일본 및 한국 정상과 잇달아 통화한 것도 전략적이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8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그(트럼프)는 우리의 가장 긴밀한 동맹이자 교역 상대국인 일본과 한국 두 국가를 분명히 우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유화 손짓을 보낸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중국도 거래를 간절히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거래는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고 썼다. 협상 의지를 피력해 낙관론을 자극하려는 행보였다.
한일 띄우기 왜?
미국은 협상을 장기전으로 보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8일 상원 청문회에서 “무역 적자는 수십 년간 쌓였고 하룻밤 사이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상대국이 관세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다. 레빗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미국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고 심각한 미국 무역 적자의 해결이 가능할 때만 협상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는 협상 중에도 부과된다.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게 미국 측 판단이다. 베선트 장관은 CNBC에 “관세 장벽의 궁극적 목표는 일자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지만 그사이에 우리는 상당한 관세를 징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첫 순위 협상 상대로 낙점된 것은 조건이 맞아서였기 때문일 수 있다. 동맹이라는 명분이 있는 데다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국가다. 상대적으로 양보를 압박하기 쉬운 두 나라와 협상해 관세 일부 인하 합의를 도출한 뒤, 나머지 나라들에 성과로 홍보하려는 심산일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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