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북면 현포 바닷가 산비탈을 온통 초록색으로 덮고 있는 부지깽이 나물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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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는 4∼5월 ‘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육지에서는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걷이지만, 울릉도에서는 참고비 명이 부지깽이 전호 삼나물 섬엉겅퀴 미역취 등 지천에서 돋아나는 봄나물을 채취하느라 온 섬이 떠들썩해진다. 경남 통영에서는 도다리쑥국이 봄의 대표 음식이라면, 울릉도에서는 삼겹살 한 점 넣고 싸 먹는 갓 캔 전호나물이 향긋한 봄 내음을 전한다.
● 부지깽이와 명이가 돋아난 나리분지
지난달 마지막 주말. 울릉도 천북면 추산 부근에 있는 문자조각공원 예림원(藝林園)에는 붉은색 애기동백이 탐스럽게 피었고 홍매화와 수선화, 개나리와 벚꽃까지 만개했다. 해양성 기후인 울릉도 바닷가 주변엔 이렇게 일찍 봄이 온다.
관음도에 있는 명이나물 모양의 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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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태하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 대풍감과 기암절벽에 수천 마리 바닷새가 살고 있는 관음도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색 꽃이 툭툭 떨어져 있는 동백나무 숲을 걷고 있는데, 풀잎처럼 생긴 의자 모양이 신기하다. 울릉도 봄 입맛을 돋우는 명이나물 이파리를 사람 키만큼 확대해 앉아 쉬도록 만든 의자다.
동백 숲을 나오니 제주 산굼부리를 연상케 하는 황금빛 억새밭 너머로 죽도와 삼선암 절경이 펼쳐진다.
동백꽃이 만발한 울릉도 관음도에서 바라본 삼선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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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야생화 천국인 나리분지를 찾았다. 성인봉 올라가는 신령수길에 섬노루귀, 섬나리, 섬현호색을 비롯해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런데…. 성인봉(해발 984m) 알봉(611m) 등 500m 이상 높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나리분지는 아직 겨울이었다. 신령수길로 30분 정도 트레킹을 했는데 길 옆에 쌓인 흰 눈을 밟으면 무릎까지 빠졌다. 3월 말인데도 하늘에선 눈비까지 펑펑 내렸다.
30년째 나리촌 식당을 운영 중인 김두순 대표(60)는 울릉도가 고향인 친구와 여행왔다가 남편을 소개받아 울릉도로 시집왔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남편과 함께 나리분지에서 명이와 삼나물, 더덕 농사를 짓고 있다.
봄나물을 채취하는 기간에는 밭둑에 대형 솥을 걸어 놓고 나물을 삶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4∼5월 울릉도 들판엔 육지에서 온 일꾼들로 가득 찬다. 울릉군 인력센터에서 사람들을 모아 일손이 부족한 농가로 보내 준다.
“봄나물 채취는 시간 다툼이예요. 나리분지에서는 4월 20일 쯤부터 보름 정도에 다 채취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새순을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지체하면 억세져서 못 먹어요. 특히 고비하고 삼나물은 금방 엄청나게 커 버리죠. 나물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한두달 사이에 나물 캐는 작업에 육지 사람 약 250명이 몰려들었다. 삼시세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일당은 11만 원 수준. 무척 고된 일이지만 육지에서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이른 봄에 할 수 있는 짭짤한 아르바이트다. 명이, 부지깽이 등은 장아찌와 김치로 만들어 비싼 가격에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봄날 울릉도는 고로쇠 물을 맛보고, 나물 채취 체험을 즐기려는 관광객까지 몰려들어 북적댄다.
이후 울릉도 명이는 전국적으로 성가를 높였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산속에서 명이를 뿌리채 캐 가면서 멸종 위기에 몰렸다. 1990년대부터 울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자연산 명이 씨를 받아 나리분지 밭에서도 명이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요즘엔 성인봉 주변에 헬기로 씨를 뿌려 재배하는 자연산 명이 복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나리분지에 명이밭이 몰려 있다면 현포와 학포, 남양 같은 해안가 비탈밭은 부지깽이(섬쑥부쟁이)와 전호나물이 새파랗게 수놓고 있다. 울릉도 공항 건설 공사가 한창인 사동 비탈길 언덕에서 전호나물을 캐고 있는 이경주 씨(신비섬횟집 운영)를 만났다.
사동해변에서 갓 캔 전호나물을 안고 있는 이경주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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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는 겨울에 눈속에서도 푸릇푸릇 자라나요. 울릉도 봄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리는 나물이죠. 상추 대신 갓 캔 전호나물에 삼겹살이나 생선회를 올려 싸 먹으면 엄청 맛있어요. 살짝 데치고 갈아서 전호 페스토를 만들어 파스타도 해 먹죠. 남은 전호나물은 삶아서 비닐봉지 수십 개에 넣고 냉동해 1년 내내 먹습니다.”
“울릉도에서는 하루 2만4000t씩 솟아나는 용출수를 수돗물로 써요. 용출수는 겨울에 엄청나게 내리는 눈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31년간 자연 정화를 거쳐 다시 솟아나는 물입니다. 수질이 무척 좋아 피부가 매끈매끈해집니다. 밥상에 밑반찬으로 오르는 수많은 봄나물도 건강의 비결이죠.”
● 해안에 불끈 솟은 ‘기운생동’ 봉우리, 추산
울릉도 북면에 있는 추산은 독보적인 울릉도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다. 화산 폭발로 생겨난 바위들이 성인봉에서 시작해 나리분지를 거쳐 깃대봉까지 달려오다가 해안에서 불끈 솟아 오른 추산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겨서 ‘송곳봉’이라고도 불린다. 추산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5월에 문을 여는 울릉도 추산마을 코스모스 리조트의 빌라 쏘메. 송곳처럼 생겨 송곳봉으로도 불리는 추산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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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산마을에 있는 코스모스 리조트는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 건축가로 선정된 김찬중 경희대 교수(더시스템랩) 작품이다. 이곳엔 빌라 코스모스, 빌라 떼레에 이어 다음달 1일 빌라 쏘메가 오픈한다. 빌라 쏘메는 건축물이 웅장한 송곳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산등성이 일부가 되도록 했고, 울릉도 전통 가옥의 특성인 너와지붕을 모티프로 차용했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수영장에는 용출수를 활용한 인피니티풀이 설치돼 있고, 암석과 명상을 활용한 스톤테라피, 울릉도 식재료를 활용한 조식과 파인다이닝을 선보인다.
추산마을에 있는 울릉도 최초의 수제맥주 양조장 울릉브루어리(Ulleung Brewery)도 젊은이들 발길을 모은다.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나리 용출수를 이용한 4가지 맛 수제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송곳봉 뒤편 마을로 가면 1970년대 포크 가수 이장희 씨의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있다. 아트센터 실내에는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김민기 양희은 같은 대한민국 대표 포크 가수들과 함께 활동하던 이 씨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호젓한 연못이 있는 아트센터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기운찬 추산 모습도 볼 만하다.
글·사진 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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