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의 시리(음성비서 앱) 업데이트 일정에 스마트폰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달 전만 해도 애플이 "시리의 업데이트를 1년 뒤로 늦추겠다"고 선언했었는데, 최근엔 "애플이 오는 가을에 시리를 업데이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데이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불확실하다.
# 애플의 속내는 뭘까. AI 에이전트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만족할 만한 품질을 낼 때까지 기다리는 걸까. 답을 알 수 없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 두 시나리오는 상당히 중요하다. 애플의 속내가 무엇이냐에 따라 대처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애플 AI 딜레마 2편 '2개의 시나리오'다.
애플이 AI 업데이트를 연기하면서 삼성전자에 기회가 찾아왔다.[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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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플 AI 미스터리' 1편에서 애플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미루고 있는 'AI 에이전트'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애플은 지난해 6월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개인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AI를 스마트폰에서 서비스할 것"이라며 AI 에이전트 기능들을 영상으로 선보였다.[※참고: AI 에이전트는 스스로 다양한 앱을 동시에 조작해 복잡한 명령을 실행하는 기능이다.]
영상 속에서 시리(siri·애플의 음성 비서 서비스)는 사람처럼 앱을 조작해 사용자의 명령을 막힘 없이 수행했고, 그 광경에 청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실상 AI 에이전트가 이번 발표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플은 "추후 시리 업데이트를 통해 해당 기능을 서비스하겠다"고 밝혔고, 이 약속을 믿은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 덕분인지 그해 9월 출시한 아이폰16은 3개월 동안 3720만대나 팔려나갔다(카운터포인트).
하지만 그로부터 반년이 흐른 지금까지 애플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애플은 지난 3월 7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시리 업데이트가 2026년에나 가능할 것"이고 통보해 소비자의 공분을 샀다. 완벽한 AI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게 이유였다.
[※참고: 내년까진 걸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있긴 하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12일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올가을 업데이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AI 에이전트를 포함해 예고했던 기능 전체를 업데이트하는 것인지, 일부 기능만 업데이트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삼성전자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AI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애플이 성명을 발표한 지 한달여가 흐른 7일, 삼성전자는 자사 스마트폰인 갤럭시S25 시리즈에 '실시간 비주얼 AI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사용자가 카메라로 주변 환경이나 사물을 촬영해 AI와 의사소통하는 게 이 기능의 핵심이다.
가령, 사용자가 옷을 영상으로 촬영하면 AI는 옷 세탁 방법, 날씨와 장소를 고려한 의상 추천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장황하게 글로 적을 필요 없이 음성과 영상만으로 AI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AI 서비스보다 직관적이고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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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애플이 시리 업데이트를 연기한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어서다. 대중에게 공개하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낮아서인지, 아니면 '완벽한 AI 에이전트'를 내놓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미룬 건지 현재로선 파악하기 힘들다는 거다. 그래서 삼성전자로선 두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AI가 여러 앱을 조작해 명령을 수행하려면 해당 앱의 작동 원리를 훤히 알고 있어야 하고, 사용자가 내린 명령의 맥락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용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거나 명령 자체를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애플만 AI 에이전트 상용화에 애를 먹고 있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도 AI 에이전트 기술력에선 애플과 큰 차이가 없다. 갤럭시 스마트폰에 내장된 달력이나 알람앱을 조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른 업체의 앱을 조작할 순 있지만, 현재는 음원 스트리밍앱 '스포티파이'와 메신저앱인 '왓츠앱'만 가능하다. 오케스트라 연주하듯 여러 앱을 다루는 AI 에이전트의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갤럭시 AI가 더 많은 서드파티(제3자) 앱을 다룰 수 있도록 앱 개발사들과 꾸준하게 접촉하고 있다"면서도 "언제쯤 본격적인 AI 에이전트 기능을 선보일 수 있을지는 공개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든 애플이든 빨리 이 기술을 선보이는 쪽이 스마트폰 시장의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AI 에이전트가 '생성형 AI의 꽃'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혁신적인 기술이어서다. 미래도 밝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에 따르면, AI 에이전트 시장은 2024년 51억 달러(약 7조4296억원)에서 연평균 44.8%씩 성장해 2030년 471억 달러(약 68조4790억원)에 다다를 전망이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목표를 위해 알아서 행동하는 자율 시스템이다. 기존 기술이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공구였다면, AI 에이전트는 집을 짓는 건축가인 셈이다. 어떤 업체든 상용화만 한다면 해당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 시나리오➋ 공개 안 하는 것이라면… = 이번엔 애플이 AI 에이전트의 공개를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사실 애플이 자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의 출시를 늦춘 건 AI 에이전트만이 아니다. 애플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2016년 9월 애플은 에어팟 1세대를 공개하면서 10월 말에 공식 론칭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달 뒤인 10월 26일에 갑자기 '제품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이유로 출시를 미뤘다.
애플의 무선 이어폰은 출시일이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유례 없는 흥행을 기록했다.[사진 | 애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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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한동안 소식이 없어 "2017년에나 나올 것"이란 소문이 업계에 퍼졌지만, 애플은 예상을 깨고 12월 20일 아이팟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출시 직전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고집이 통했는지 에어팟은 불티나게 팔렸다.
연간 판매량이 100만대(2016년)에 불과했던 무선 이어폰 시장 규모가 1500만대(2017년)로 늘어나는 데도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애플이 AI 에이전트 업데이트를 1년 미뤘다고 해서 삼성전자가 방심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가 승기를 잡겠다고 설익은 AI 에이전트를 선보였다가 곧바로 애플에 '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
박재혁 교수는 "AI 에이전트는 스마트폰 같은 실물 제품이 아닌 일종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통해 언제든지 도입할 수 있는 기술이다"면서 "상용화 타이밍보다 기술 완성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언젠가부터 AI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혁신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AI를 전면에 내세운 삼성전자는 '시장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애플은 약속했던 AI 기능을 선보이지 못해 '혁신 의지를 잃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제 두 업체는 AI 에이전트 기술이란 '혁신'을 놓고 다시 한번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승리의 여신은 과연 누구에게 미소를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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