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토)

이슈 IT기업 이모저모

한국 지도에 집착하는 구글, 꿍꿍이 뭐길래…"기술 생태계 잡아먹힌다"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MT리포트] 한국지도 반출 위기 (下)

[편집자주] '고산자' 김정호가 한국 팔도를 누비며 세밀한 국토 정보를 담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 164년. 한국의 지도가 해외에 반출될 위기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국은 안보를 이유로 고정밀 지도데이터 해외 반출을 막아왔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인 구글은 트럼프 행정부까지 등에 업고 지도데이터 반출을 압박하고 나섰다. 구글이 한국 지도에 집착하는 이유와 지도 생태계를 돌아본다.



1:5000 고정밀 지도 정보 요구 3번째…구글의 꿍꿍이는?


머니투데이

한국지도/그래픽=윤선정


구글이 한국 정부에 1 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정보를 요구하자 업계에서는 단순히 구글 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율주행 등 다른 산업에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도 정보는 자율주행과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공간정보산업 등 미래 첨단산업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다.

14일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구글이 고정밀 지도를 확보한 뒤 웨이모의 자율주행 상용화나 비전프로 공간컴퓨팅 개발 등 사업 확대에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1 대 5000 축척 지도는 일반적으로 도시계획이나 SOC(사회간접자본) 건설 등에 활용할 정도로 정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통상적인 지도 기능은 1 대 2만5000 축척 지도로도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구글이 원활한 구글맵 서비스를 위해 해당 데이터를 고집하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도 정보의 중요성은 디지털 트윈, 로보틱스 등 관련 산업이 성장하며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트윈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167억5000만달러로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35.7%씩 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국내의 경우 지난해 기준 공간정보산업 사업체 수는 5955개로 99%가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구글이 지도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사업에 직접 진출하거나 글로벌 기업들에 문호를 열어줄 가능성을 염려한다.

지도 사업을 활용해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는 국내 빅테크들도 구글의 위협 앞에 위태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구글의 유튜브가 한국 시장에 뒤늦게 진출했지만 전체 동영상 플랫폼은 물론, 유튜브 뮤직으로 음원 앱 시장까지 장악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네이버(NAVER)는 네이버지도를 슈퍼 앱(개별 앱 서비스를 통합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단순히 위치 검색을 넘어서 제반 정보까지 검색할 수 있도록 리뷰 기능을 강화하고, 쏘카 등 국내 기업과의 협력도 진행한다. 사용자 위치 기반 재난 및 사고 정보 안내, 거리뷰 서비스 등 공적인 역할도 수행한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맵에 전문가 검색 기능, 실내지도를 통해 사람이 붐비는 장소의 혼잡도를 체크하고, 트렌드 랭킹 서비스로 이용자가 더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이용자 편의를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지도 정보를 확보할 경우 구글 웨이모 등 자율주행학습이 가능해진다"며 "이런 경우 국내 자율주행 관련 스타트업 등 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외국 기업이 국내 기술 생태계를 잡아먹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산 국가만 정밀 지도 안 준다…이스라엘도 공산국가?


고정밀 지도 정보 요구하는 구글/그래픽=김지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글이 지도 사업을 위해 한국 정부에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정보를 요구하자 업계에서는 단순한 지도 사업 외에 다른 사업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 이스라엘 등 다른 국가도 고정밀 지도 정보를 반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구글 맵에서 도보 길 찾기 등 정밀 지도 서비스 이용이 불가한 국가는 한국과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러시아 등이다. 구글은 일부 공산 국가나 독재 국가를 제외하면 구글 맵이 주로 통용되는 만큼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구글은 어떤 국가에서도 데이터를 현지 서버에 보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한국 정부가 근 20년간 국내에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고 군사시설 등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하라는 등의 조건에 대해 구글은 듣지 않았다.

국내 전문가들은 1 대 2만5000 축척의 지도로도 충분히 해외 관광객을 위한 정밀 지도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용자 대상 지도 서비스 경쟁력은 축척의 정밀도가 아니라 POI(장소정보)와 최신화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이용자가 네이버지도 및 카카오맵을 구글 맵보다 선호하는 이유도 정밀해서가 아닌 POI 정보 확산과 최신화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동일 축척으로 지도 서비스를 하는 구글과 애플을 비교했을 때 구글은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하지 않는 반면 애플은 부정확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1 대 2만5000 축척의 지도를 사용 중인 애플은 최근 한국에서만 불가능했던 '나의 찾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도 밝혔다. 정밀 지도가 없어 서비스할 수 없다는 구글의 주장과 배치된다.

또 구글의 주장처럼 북한 같은 공산국가뿐만 아니라 러시아나 이스라엘 등 군사·외교적으로 민감한 국가도 고정밀 지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기존에 정보를 공개했다가 전쟁을 겪게 된 나라들이 구글맵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례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텔레크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맵이 업데이트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군사 시설을 보여줬고,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이 이 시설을 특정해내면서 우크라이나가 구글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국이 고정밀 지도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이유다.

구글은 국내의 보안 시설을 가림 처리해주는 대신, 해당 시설의 정확한 좌푯값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좌푯값을 외국 서버에 보관하다가 사이버 공격이라도 당하면 고스란히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서버가 외국에 있으면 한국 정부의 행정력도 제한된다.

구글은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멕시코만을 'Gulf of America(미국만)'라고 표기했다. 구글이 국내 지도 정보를 가져가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할 경우 한국 정부는 구글에 수정 요청을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구글이 받아들일 것이란 보장도 없다.

보안 시설 가림 처리도 절대적이지 않다. 2018년 벨기에 정부는 구글이 자국 군사 시설에 대한 위성 사진을 제대로 가림 처리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대만이 구글에 군사 시설을 가림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구글은 위성 지도를 임의로 편집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있다"라며 "처음에는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하면서 막상 정보를 받으면 말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도 넘기면 IT산업 몰락할수도"…전문가들, 범국가적 대응 촉구


구글맵 지도 데이터 반출에 관한 전문가 의견/그래픽=윤선정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도에 단순 지리데이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숙박·식당 예약, 택시 호출 등 여러 산업이 연계돼 있습니다. (해외 반출시) IT산업 생태계가 몰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4일 전문가들은 구글맵이 요구하는 1대 5000 축척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에 대해 한 목소리로 우려를 쏟아냈다. 길찾기, 네비게이션 사업은 물론, 지도를 바탕으로 한 숙박·음식점 예약 등 관련 중소중견 벤처기업들이 모두 빅테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 구글이 한국에서 위치기반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게 되면 지도에 딸린 숙박·택시 등도 뺏길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도 데이터를 주더라도 지도 기반 다른 비즈니스는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도 "구글맵이 들어오면 관광 수익 감소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며 "지도는 게이트웨이(Gateway)고 이를 통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심리스(Seamless)' 체계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지도 자체만큼이나 숙박 예약 등 온라인 관광 서비스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은 소리 나는 대로 장소를 번역하거나 콩글리시를 사용하는 등 부실한 언어 지원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은 영안실을 'Yeongansil'로 번역한 네이버지도, 오른쪽은 영화관 '씨네시티(Cinecity)'를 'Ssinesiti'로 번역한 카카오맵이다./사진=네이버지도 및 카카오맵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네이버(NAVER)와 카카오의 외국인 관광객 수요 흡수를 위한 노력도 요구했다.

현재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은 소리 나는 대로 장소를 번역하거나, 직역한 용어를 사용하는 등 언어 지원이 부실하다. 영안실(mortuary)을 'Yeongansil'로 번역하거나, 영화관 '씨네시티(cinecity)'를 'ssinesiti'로 표기한다. 지원 언어도 네이버 지도는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4개, 카카오맵은 한국어와 영어 2개 뿐이다.

지도 연계 서비스도 이용이 제한된다. 유저들이 남긴 리뷰나 식당 공지, 주의사항 등은 번역되지 않고, 업데이트도 한국어 버전보다 늦다. 이 같은 지적에 네이버는 이날부터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현지인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비로컬(BE LOCAL)'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한시적 이벤트라는 한계가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UX(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외국인 친화적 설계가 부족하고 다국어 지원 범위가 제한적"이라며 "외국인 리뷰 기반 정보 제공, 해외 결제 연동, 대중교통 경로 최적화 등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구글맵 지도 반출 관련 신중한 의사결정을 요구했다. 여러 산업에 걸친 이슈인만큼 국가 차원의 대응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IT(지도)를 내주더라도 원자력이나 다른 산업에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범국가적 차원의 컨트롤 타워를 두고 실리적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이 사안은 단순한 관광·비즈니스 이슈를 넘어서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지도 데이터의 레이어별 접근 제한, 군사 및 행정 보안시설의 마스킹, 구글과의 협정을 통한 민감 정보 필터링 등 기술·정책적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며 "미국도 자국 기업 보안이나 데이터에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는 만큼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국 기업의 경쟁력 보호가 디지털 주권 확보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데이터 반출 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정부 연구용역이나 논문 지원 등을 통해 국민 인식을 파악하면 논의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현 기자 goronie@mt.co.kr 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