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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토)

“우영우는 잊어라”…‘수술실의 사이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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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하이퍼나이프’ 주연 박은빈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오른쪽 사진)에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따뜻한 캐릭터와 다르다는 평가에 대해 “이번 작품에서 그간 안 해본 표현과 표정을 해보게 돼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이 해소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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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이렇게 무서워할 줄 정말 몰랐죠.”

9일 마지막 7·8회가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8부작 드라마 ‘하이퍼나이프’에서 주인공 정세옥을 연기한 배우 박은빈(33)은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시청자 반응이 다소 의외였다고 했다. 정세옥은 반(反)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닌 신경외과 의사. 생명을 살리는 칼을 들고도,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살인을 택할 수 있는 냉정한 인물이다.

작품이 공개된 뒤 온라인에선 “박은빈 눈빛이 진짜 돌았다”, “맑고 똘똘한 배우가 이렇게까지 독해질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은빈은 담담했다. 그는 “촬영하는 내내 미쳐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이퍼나이프’는 한때 촉망받았던 천재 의사 정세옥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최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메디컬 범죄 스릴러.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복수와 집착을 그렸다. 여기서 세옥은 타인에겐 무례할 정도로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 소화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다.

“세옥에게 도덕이나 윤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충동은 있는데, 공감은 없는 사람이에요.”

박은빈은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햇살 같은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 덕에 팬들에겐 토끼의 방언인 ‘토깽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차갑고 냉혹한 얼굴을 꺼냈다.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안 해본 장르, 안 해본 역할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는 대본의 첫 장면을 읽고 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주인공이 의사인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낯설고 새로웠어요. 첫 장면 지문에 ‘암전(暗轉) 위로 헨델(1685~1759)의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가 흐른다’고 적혀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마음을 빼앗겼어요.”

캐릭터 해석에는 이론적 접근도 더했다. 서강대 심리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한 박은빈은 “심리학을 전공해 인간의 성격 유형이나 병리적 특성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었다”며 “그걸 바탕으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더 깊이 분석하려 했다”고 말했다.

“세옥을 단순한 사이코패스로 소비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사람이에요. 자기 합리화가 심하고, 감정적으로 미숙하죠. 아이처럼 생떼를 쓰는 모습도 있어요. 그게 흥미로웠어요.”

정세옥을 추락시키고도 성장하길 바라면서 희생을 자처하는 최덕희와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중심축. 시청자들은 이 관계를 ‘피폐 멜로’라고 부르지만, 그는 다르게 해석했다.

“사랑보단 애착이죠. 강한 애착. 그런 감정이 서로를 집어삼키는 게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어요.”

이날 박은빈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은 대본집을 들고 왔다. 질문마다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며 해당 장면을 직접 찾아본 뒤 답변했다. 이런 꼼꼼함이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스토브리그’(201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년) 등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보였다.

올해로 벌써 데뷔 30년 차. 그는 “어릴 땐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의사를 연기하고 있다”며 “배우란 직업은 매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뇌에 미쳐 뇌수술에 집착하는 세옥과는 달리, 박은빈은 ‘심장’을 언급했다.

“이만큼 제 심장을 뛰게 하는 직업이 없네요. 어렸을 땐 고민도 많았지만, 이제는 배우라는 선택이 저한테 맞는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하하.”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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