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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토)

달러당 1500원이 뉴노멀? 원화가치 하락 의도적일까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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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 트럼프의 관세 도발 여파로 각국 환율이 심상치 않다. 중국은 관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섰다. 국제 금융계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지난해 10월 '1400원 뉴노멀' 실언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 자국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경쟁국에 피해를 주려는 정책을 근린궁핍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 궁핍화는 자국내 영세 사업자나 임금근로자들도 함께 궁핍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통화 가치의 인위적 평가절하를 자세히 알아봤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뉴욕에서 열린 한국경제 설명회에서 현재 1400원과 과거의 1400원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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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우발적인 말 한마디에서 우리 정부의 환율 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른바 '환율 뉴노멀' 발언이다.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해 10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현재 1400원과 과거의 1400원은 다르게 봐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환율 상승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환율 상승을 그대로 두겠다는 일종의 평가절하 용인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을 '근린궁핍화' 정책이라고 한다. 경쟁국의 경쟁력을 훼손시켜서 수출경쟁에서 이기려는 것이어서다.

그런데 이 '근린궁핍화'라는 게 실은 자국내 비수출 산업과 서민들까지 궁핍화하는 정책이다. 아주 단순하게 지난해 환율보다 올해 환율이 100원 더 오르면 어떻게 될까. 수출 대기업의 환차익이 늘어나는 대신 내수에 기반을 둔 영세사업자, 임금근로자의 삶은 더 고달파진다.

더구나 미국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국가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최상목 부총리의 '뉴노멀' 발언이 있은 지 한 달도 안 돼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독일·중국·일본·대만·베트남·싱가포르와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재지정했다.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무역 파트너들이 자국 화폐가치를 일부러 떨어뜨리는 일(평가절하)이다. 평가절하는 수출품 가격을 하락시켜 수출을 부양하고, 수입품 가격을 상승시켜 그 수요를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대미對美 무역흑자 15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 3% 이상 8개월 동안 GDP 2% 이상 달러 순매수 등 3가지 중 2개가 해당하면 관찰대상국, 3개 다 해당하면 환율조작국으로 분류한다.

인위적 평가절하는 중국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지난해부터 하락하고 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면, 달러 가치가 떨어졌으니 위안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래서 위안·달러 환율은 달러 가치의 하락을 반영해 낮아져야 한다.

[자료 | 시카고상품거래소, 각국 외환시장,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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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위안·달러 환율은 거꾸로 높아졌다. 위안·달러 환율은 지난해 9월 30일 달러당 7.00위안에서 11월 7.10위안을 돌파했고, 올해 4월 들어서는 7.30위안대에서 형성되고 있다.

국제 금융계는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섰다고 판단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초 전세계에 고율 상호관세를 임의로 부과하고는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이를 90일 유예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결과다.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는 보편관세와 상호관세를 모두 포함해 145%다.

일례로 A씨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한 1만원짜리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 10개를 사면(10만원), 관세로만 물건값보다 많은 14만5000원을 미 정부에 내야 한다.

중국은 이 충격을 어떻게 회피할까.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서서 지난해 9월 30일 기준 달러당 7.00위안인 환율을 14.00위안으로 조정하면, 실제 부과되는 관세가 7만2500원으로 줄어든다.

미국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중국이 한두 달 내에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10~20% 정도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에서는 중국의 고의 평가절하가 30~40%까지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자국 통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려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지속적으로 대량 매입하거나, 자국 통화의 통화량을 늘려서 그 가치를 주저앉혀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통화량은 한국은행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다시 금리인하에 나섰을 때를 모두 포함해 항상 증가했다. 현금성 자금의 합인 광의통화(M2)는 10년 만에 2배 늘어나 2025년 1월 현재 4203조원에 달한다. 실제 긴축은 없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환율조작 의혹에 자주 이름을 올린다. 미국외교협회(CFR)는 2023년 보고서에서 "미국 재무부는 각국 중앙은행 이외의 주요 참여자들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본다"며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의 예를 들었다.

"한국은행은 (미국 재무부에) 자신들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2022년 여름 국민연금이 외화를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원화가 의도치 않게 약세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일본공적연금(GPIF)이 엔화 약세가 필요할 때마다 시중에서 달러를 대량 매입하면서 늘어놓는 변명과 판박이다. CFR 보고서는 "중국이 국영은행 등을 통해서 비공식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일명 '보이지 않는 외환보유고'를 이제 국제 금융계는 환율 조작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한중일의 평가절하 의혹을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하로 대응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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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무역 상대국의 환율을 감시하는 건 결과적으로 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외환시장에 개입해 원화를 평가절하하면, 결과적으로 우리 수출기업들이 그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영업외수익 1조5000억원을 기록했는데, 환차익에 해당하는 순이익 규모가 6200억원에 달했다. 하나증권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현대차 영업이익은 약 1.9%, 기아차 영업이익은 약 1.7%씩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환율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는 항상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함께 불러온다. 무역흑자가 더 증가하지만,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중되고 외채 부담이 늘며, 소비자심리를 악화한다. 내수기업, 자영업자, 임금근로자 등 원화 평가절하의 혜택을 못 보는 건 대체로 서민들이다.

국가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결정한다. 그리고 환율은 자원 배분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지금 정부는 누구를 우대하고, 누구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지 환율 정책에 모두 담겨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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