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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토)

고소득층 매몰, 근로자 차별… 오세훈표 '저출생 대책' 함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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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 부부합산 월 소득 900만원 이상 가정의 비중 73.2%.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9월부터 추진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가정의 현주소다.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연봉 1억원 가정이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 이 때문인지 올해 상반기 시작하려던 전국 단위의 본사업은 물거품이 됐다. 지자체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번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엔 더 큰 논란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오세훈표'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외국인 가사관리사와 가사사용인 사업은 대체 누굴 위한 정책일까.

서울시와 법무부는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6월부터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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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극복 대책인가,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인가. 말 많고 탈 많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1년 더 연장됐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2024년 9월~올해 2월 진행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내년 2월까지 이어간다고 밝혔다.

당초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을 거쳐 전국 단위로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해당 사업을 신청한 지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시와 세종시가 신청하긴 했지만 신청 가정이 20여곳에 불과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그저 '오세훈표' 사업에 머물고 있다는 건데, 사실 예견됐던 결과다. 이 사업이 돌봄노동을 값싸게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 시장은 2022년부터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홍콩처럼 100만원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이 주장은 뭇매를 맞았다.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건 고용·직업상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배된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결국 서울시가 한발 물러섰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비전문취업비자(E-9) 자격으로 가사서비스 제공업체 2곳(홈스토리생활·휴브리스)과 근로계약을 맺고 최저시급을 보장받았다.[※참고: E-9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은 정해진 사업장과 고용계약을 맺고 최장 3년간 일할 수 있다. 내국인과 같은 노동법을 적용해 최저시급을 보장받는다.]

문제는 시범사업이 끝난 후다. 서울시가 시범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보완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건 무엇일까.

■ 질문➊ 지속가능한가 = 먼저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일례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2명은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숙소를 이탈해 '강제 출국'당했다. 9명은 자녀돌봄 등을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갔다. 현재 취업활동기간을 연장해 일을 계속하는 이들은 89명이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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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들 중엔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로 서울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설문조사' 결과,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73.0%는 "한국에서 계속 근로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지만, "주거비 등 높은 생활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이들도 66.3%에 달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시범사업을 연장하면서 지원 항목을 축소했다. 서울시는 공동숙소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에게 쌀·세제·커피·햄 등을 제공해왔지만, 3월부턴 쌀과 세제를 제외한 품목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 공동숙소에서 거주하는 인원도 33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측은 "기존 숙소요금(월 52만~54만원)이 부담된다는 의견이 있었던 만큼 숙소를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란 입장이지만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공동숙소보다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의 연립·다세대 원룸 평균 월세는 67만원(보증금 1000만원 기준)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서울시의 처사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연장했다기보다 민간에 떠넘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질문➋ 누굴 위한 가격 인상인가 = 가격 인상의 목적도 따져봐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가사서비스 제공업체에 운영비 명목으로 예산 1억5000만원을 지원했지만, 지난 3월 그중 일부를 '이용요금'에 전가했다. 시간당 1만3940원이던 가사도우미 이용요금이 1만6800원으로 20.0% 인상된 이유다.

인상분이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인상분은 고스란히 가사서비스 제공업체로 들어간다. 서울시는 "당초 시범사업에선 가사서비스 제공업체의 운영비·관리비 등을 이용요금에 제대로 포함하지 않았다"면서 "3월부터 요금을 정상화한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문제는 이용요금 인상으로 서민 가정엔 더 높은 장벽이 생겼다는 거다. 인상 금액을 적용하면 시간제(하루 4시간·이하 주 5일) 이용요금이 월 134만4000원, 종일제(하루 8시간) 이용요금은 월 268만8000원에 달해서다. 매달 2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가정은 일부 고소득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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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설문조사에 참여한 112개 이용가정 중 부부합산 월 소득이 '900만원 이상'인 가정이 73.2%에 달했다. 월 소득이 '600만원 이하'인 가정은 전체의 8.9%에 그쳤다. 가사도우미 사업이 사실상 연봉 1억원이 넘는 가정을 위한 정책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인지 이용가정의 거주지도 강남권(강남구 19.6%+서초구 13.4%)에 집중됐다.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저출생 대책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질문➌ 서울시 왜 멈추지 않나 = 이처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서울시의 정책적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6월부터 법무부와 손잡고 국내 체류 중인 유학생·결혼이민자 가족 등을 대상으로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논란의 여지가 숱하다. 그중 대표적인 건 '가사사용인'이란 정체성이다. 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가사관리사와 달리 '가사사용인'은 개별 가정과 계약을 체결한다. 당연히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사사용인 제도를 외국인에게 적용하면 차별적인 일자리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돌봄노동의 가치를 더 떨어뜨릴지 모른다.

이런 징후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24일부터 외국인 유학생·졸업생·결혼이민자 가족 등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에 참여할 이들(4000명)을 모집하고 있다. 6월부턴 '가사사용인' 사업을 시작할 방침이지만 아직까지 가사사용인의 이용요금이나 임금 수준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용가구와 서비스 제공자(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사적 계약인 만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게 서울시 측의 입장이다.

논란의 여지는 또 있다.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의 목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지만, 이용가정 대상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만 6세 이상,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 양육 가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앞서 추진한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장점으로 '영어 의사소통'이 꼽힌 만큼 자녀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은 가정을 의식한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참고: 지난해 6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유학생·외국인 근로자의 배우자에게 육아·가사 활동을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을 진행할 민간 플랫폼 업체(이지태스크)를 선정했는데 자격 논란이 불거졌다. 민간 플랫폼 업체는 법무부의 허가를 받은 외국인 가사사용인이 개인정보·근무가능시간 등을 등록하면 적합한 이용가정과 매칭해줘야 하는데, 이지태스크는 지금껏 단순한 직업정보만 제공(직업정보제공사업)해왔기 때문이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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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육아·가사 분야에 특화한 업체인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사업이 본격화하면 해당 업체가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 사업 자격을 취득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선先선정 후後자격'을 꾀한 셈이어서다.

서울시가 이렇게 전문성 없는 업체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걸까.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한국인 가사사용인도 최저임금이나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기존 가사사용인 제도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도 외국인을 가사사용인으로 활용하겠다는 건 단순히 돌봄 노동자의 고용 단가를 낮추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은 저임금 국가 출신 외국인을 고용 착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말 많고 탈 많은 오세훈표 저출생 대책. 과연 서울시는 이 사업을 얼마만큼 다듬고 개선해낼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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