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 다변화 기회
주문형반도체를 뜻하는 ASIC 시장 성장은 고객사 다변화 기회가 될 전망이다. ASIC는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약자로, 특정 용도에 맞게 설계된 반도체 칩을 말한다. 범용 컴퓨터가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대신, ASIC는 딱 한 가지 기능을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만든 칩이다. 일반 CPU나 GPU보다 확장성은 떨어지지만, 전력 대비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
‘반(反)엔비디아 연합’ 진영에서는 GPU 대체재를 목표로 ASIC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빅테크 기업은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필적할 만한 신규 ASIC를 선보이거나 기존 제품 업그레이드로 ‘탈(脫)엔비디아’를 서두른다. 현재 양산 중인 구글 TPU와 아마존 트레이니움(Trainium)은 내년을 기점으로 각각 7세대, 3세대로 전환이 예상된다. 메타도 내년 4세대 MITA 양산을 목표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마이아(Maia)200’도 내년 양산 시작이 기대된다.
AI 칩 주요 작업이 ‘추론’과 ‘연산’ 등으로 세분화해 ASIC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IT 업계는 예상한다. 시장에서는 내년 ASIC 출하량이 엔비디아 AI 칩 공급량을 넘어설 수 있단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JP모건은 올해 글로벌 ASIC 시장 규모가 약 300억달러(약 41조원)에 달하고,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리라 봤다.
ASIC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Q(Quality·수량)의 열세’를 뒤집을 기회가 될 전망이다. 가령, 구글 6세대 TPU에 8단짜리 HBM3E 2개가 들어갔다면, TPU 7세대 제품에는 12단짜리 HBM4 6개가 탑재된다. 최근 마이크론은 실적 발표에서 HBM 주력 4개 고객사로 엔비디아·AMD 등과 함께 ‘ASIC 플랫폼’ 기업을 지목했다. 차용호 LS증권 애널리스트는 “2026년부터는 추론 시장 개화와 함께 ASIC 업체 점유율 증가로 HBM 고객사 다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봤다.
다만, ASIC 시장 개화가 HBM 산업 속성을 바꿔놓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단 시각이 있다. 엔비디아 HBM 공급망이 삼성전자 가세 땐 사실상 3자 구도로 짜여진다. ASIC 칩 성장까지 더해질 경우 HBM 시장이 주문형에서 ‘범용·경기민감형(Cyclical) 산업’으로 전환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종 애널리스트는 “HBM은 주문생산방식 등으로 수요 예측 가능성을 높여 경기 민감도가 높은 기존 반도체 산업 약점을 상쇄했다는 점에서 많은 프리미엄이 붙었던 것”이라며 “ASIC 개화로 HBM에도 범용 꼬리표가 붙기 시작하면 후발 주자들은 초기 기업이 누렸던 가격 결정권에 버금가는 협상력과 이익률을 확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회의 순간 5. 순풍에 돛단 갤럭시
AP 칩 내재화 차질은 변수
삼성전자가 최근 공개한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Z 폴드7·Z 플립7’이 흥행 가도를 달리는 점은 이 회장 어깨를 가볍게 만들었다. 다만, 스마트폰 핵심 부품(모바일 D램·AP) 공급을 줄줄이 경쟁사에 내준 점은 MX사업부(스마트폰) 수익성에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 7월 15~21일 Z 폴드7·Z 플립7에 대한 사전 판매 결과 104만대가 팔렸다. 기존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인 2023년 ‘갤럭시 Z 폴드5·Z 플립5’ 102만대보다 2만대 더 많았다. 지난해 나온 갤럭시 Z 폴드6·Z 플립6 사전 판매(91만대)와 비교해도 크게 앞선다.
이번 신제품은 전작 보다 더 가볍고 얇아진 디자인으로 흥행 기대감을 키웠다. 갤럭시 Z 폴드7은 접었을 때 두께가 8.9㎜로 전작(12.1㎜)보다 얇아졌다. 무게도 263g에서 215g으로 줄었다. Z 플립7은 1.25㎜ 슬림 베젤과 전면 플렉스윈도우를 적용해 한 손에 쥐기 쉬운 크기로, 휴대성과 사용 편의성이 향상됐단 평가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삼성전자 폴더블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23% 증가한 780만대로 추정된다”며 “지난해 640만대를 저점으로 성장세로 전환됐고 내년에는 941만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봤다.
다만,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핵심 부품 공급망 이원화 전략에 차질을 빚고 있는 점은 걸림돌로 지목된다. 통상 스마트폰 제조사는 복수 공급사를 두고 공급망 밸류체인을 구축해 협상력을 높이고 손익 통제력을 확보한다. 삼성은 최근 플래그십 스마트폰 핵심 부품에서 DS 부문보다 외부 경쟁사 의존도가 높아졌다.
앞서 갤럭시 S25 시리즈에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미국 퀄컴 ‘스냅드래곤8 엘리트’가 전량 탑재됐다. 이어 Z폴드7에도 퀄컴 ‘갤럭시용 스냅드래곤 8 엘리트’ 칩셋이 탑재됐다. AP는 스마트폰 핵심 부품으로 MX사업부 손익 구조를 좌우한다. 퀄컴 칩이 주력이 될 경우 가격 협상력이 떨어져 이익률 확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퀄컴은 공정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신제품 출시 때마다 전작 대비 가격을 최대 30%까지 인상한다. 삼성전자 안팎에서 ‘갤럭시가 대박 나도 돈은 경쟁사가 쓸어 담는 꼴’이란 자조가 팽배한 이유다.
삼성전자 주가 전망
외국인 몰려오는데…8만전자 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법원 무죄 선고와 함께 주가가 탄력받았다.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연중 최고치를 잇따라 갱신하는 중이다. 증권가는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만에 ‘7만전자’를 넘어 ‘8만전자’가 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운다.외국인 몰려오는데…8만전자 간다?
실적만 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최근 삼성전자는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올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연결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 감소한 4조6000억원을 냈다.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23년 4분기 이후 6개 분기 만이다.
저조한 실적에도 주가는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가 ‘실적 바닥’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편, 미국이 중국에 대한 AI GPU 수출 재개를 허가하며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까지 나왔다. 키움증권은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회복하고 있다”며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목표가를 종전 8만원에서 8만9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7월 18일에는 유안타증권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7만4000원에서 7만7000원으로 올려 잡았다. 지난 6월부터 7월 17일까지 삼성전자에 대한 보고서가 23개 발간됐지만 목표가를 상향한 보고서는 2개뿐이었다. 오히려 지난 7월 14일 미래에셋증권이 목표주가를 8만원에서 7만8000원으로 내리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인데, 최근 들어 눈높이가 올라갔다.
국내 증권사들은 대체로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에 실적 저점 구간을 지나 이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특히나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HBM과 파운드리의 세대교체를 기회로 다시 경쟁력 회복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삼성전자는 올해 현재 유통되는 최신 제품 HBM3E의 다음 세대 HBM4의 샘플 공급을 앞두고 있다.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2나노미터(㎚) 공정 개선을 통한 고객사 확보에 나섰다. 최근 씨티도 HBM3E 12단 제품의 고객사 품질 통과 기대감과 파운드리 가동률 회복 등을 이유로 삼아 삼성전자 목표가를 9만원으로 높인 바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DRAM의 경우 1cnm 제품의 수율이 상당 부분 개선됐고, HBM4의 품질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류형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범용반도체 경쟁력 강화, 파운드리 적자 축소 등 사업 경쟁력 회복 조짐이 일부 보인다”며 “비영업 부문에서의 효율화 노력과 추가 주주환원 기대감 등을 고려하면 주가는 여전히 저평가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비교적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며 “자사주 추가 매입과 소각을 고려할 때 주가 불확실성을 떨쳐내는 구간으로 돌입했다”고 판단한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0호 (2025.07.30~08.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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