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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코로 휘파람 부는 게 말이 되냐며 영화 퇴짜...1인 제작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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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개봉 서울독립영화 대상 'THE 자연인'
    노영석 감독, '조난자들' 이어 11년 만 신작


    한국일보

    'THE 자연인'의 세 주연배우 정용훈(왼쪽부터) 신우섭 변재신. 스톤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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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사에서 개발 가능성에 점수를 매기는 리포트가 있는데 10점 만점에 2점을 받았어요. 코로 휘파람을 분다는 게 말이 되느냐, 너무 황당해서 투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2009년 독립영화 ‘낮술’로 주목받은 노영석 감독이 두 번째 영화 ‘조난자들’에 이어 11년 만에 내놓은 ‘THE(더) 자연인’은, 연출자의 소개에 따르면 “기괴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다. ‘괴랄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투자사로부터도 번번이 퇴짜를 맞아 애초에 제작이 불투명했다.

    영화는 귀신을 본다는 자연인을 찾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두 명의 젊은 유튜버들이 겪는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우며 가끔 더럽기까지 한 이야기를 그린다. 모두가 외면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 선택한 건 1인 제작 방식. 노 감독은 연출과 제작, 각본, 촬영, 편집, 음향, 음악, 미술, 컴퓨터그래픽(CG) 심지어 차량 운전까지 홀로 도맡아 2시간짜리 영화를 완성했다.

    개봉 이틀째인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 상영 후 만난 노 감독은 “(‘조난자들’ 이후) 좀 더 큰 영화를 해보려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계속 거절당하다 보니 어느새 5년이 지나 있었다”면서 “뭐라도 빨리 만들어서 알리지 않으면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겠다 싶어 구상하게 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제목은 누구나 연상하는 바로 그 TV프로그램에서 가져왔다. 노 감독이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가 영화의 시작이었다. 누가 봐도 계절에 맞지 않는 나물을 캐는 장면을 보면서 작위적 연출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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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자연인'을 연출한 노영석 감독. 스톤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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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예전에 같이 영화 찍던 친구들은 지금 몇 백억짜리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난 아직도 같은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아무도 안 해본 걸 해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찍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매 순간 집중하며 찍었습니다.”

    촬영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2020년 가을 강원 평창 등지에서 3주 정도에 마쳤다. 자연인이 사는 집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찍었던 세트장이다. 유튜버 인공과 병진을 각각 연기한 변재신 정용훈은 장편 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두 배우는 노 감독이 유튜브를 찾아보다 캐스팅했다. ‘낮술’에 출연했던 영화 프로듀서 신운섭과 이란희 감독은 다시 배우로 돌아와 각각 의뭉스러운 자연인과 소복을 입은 란희 역을 맡아 공포와 폭소를 동시에 안긴다. 이들은 실제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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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자연인'에서 인공 역의 변재신(왼쪽)과 란희를 연기한 이란희 감독. 스톤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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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측 불허의 이야기가 이어진 끝에 가장 큰 반전은 영화가 모두 끝난 뒤 등장한다. 크레디트를 도배하듯 반복되는 노영석 감독의 이름은 깜깜한 밤 계곡에서 목욕하는 란희 대역으로 다시 한번 나타난다. “원래는 내가 연기하려고 수영복까지 준비했다“는 이란희 감독의 말에 노 감독은 “물이 차고 깊어 내가 들어가겠다고 하자 재신씨가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해서 말리느라 난리도 아니었다”며 웃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개봉 지원 프로그램 심사에서도 탈락한 노 감독은 2,500만 원을 들여 영화를 완성했다. 편집에 1년을 쏟아부은 뒤 2023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한 그는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상금 2,000만 원도 받았다.

    어렵게 개봉은 했지만 관객과의 거리는 아직 멀다. 정용훈은 “호불호가 있는 영화지만 이런 영화가 많아져야 한국 영화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1986년을 배경으로 초등학생들이 여행을 떠나며 겪은 이야기를 언젠가 만들고 싶다는 노 감독은 “놀이기구를 타고 이상한 세계에 들어가듯 제 영화에 몸을 맡긴 채 그냥 느껴 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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