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북미 대화로 남북관계 견인 구상
남측은 대북 대화 정국서 공간 확보
북한으로선 한미 협의에 불편감 느낄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워싱턴=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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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한반도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 본인은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를 자처하며 무대 중앙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보했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현실을 고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을 먼저 추동한 뒤 남북대화를 끌어내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관여 구상이 윤곽을 드러낸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가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때 북한과 한반도 관계가 안정적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김여정(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저를 비난할 때도 (트럼프) 대통령님과 김정은 간 관계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를 한다면 나는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 김정은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다"고 곧장 호응했다. 그는 "김정은과 잘 어울렸고 북한은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올해 안에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올해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 김 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해보자고 제안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슬기로운 제안"이라고 반색했다.
이 대통령의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 구상은 다분히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측 태도를 감안한 자구책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이재명 정부 출범 뒤 거듭된 유화책에도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다"며 대화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을 향해서는 "우리 국가수반(김 위원장)과 미 대통령 간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7월 김 부부장 대미 담화)며 협상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대북 대화를 위해선) 누군가 단초를 열어야 하는데 현 국면을 냉철히 보면 남북보다 미국에 조금 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상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대화 재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도적 역할을 넘기고 남측은 이후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2018년도 남북대화 정국과도 대비된다. 당시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남북 소통을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북미 간 대화 정국 흐름을 먼저 만들고, 남북관계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수면 아래 있던 미국의 대북 관여 문제가 이 대통령의 제안으로 재부상했다"며 "이번 회담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에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한미 간 공감대도 재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뒤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발표한 연설에서 "한반도와 전 세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로선 차후 북미 대화 정국에서 소외될 여지를 줄인 것이지만 북한으로선 현 상황에 불편감을 느낄 공산이 있다. 북미 대화에 남측이 개입할 여지가 커진 데다, 비핵화를 위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입장 또한 일단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은 지난달 29일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며 비핵화 협상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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