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정 삼성전자 ESG&스마트공장지원센터 위원(왼쪽)과 김경범 자연그린 대표가 생산된 단무지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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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종일 삽으로 양념을 퍼 담아 무와 섞느라 허리·어깨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기계가 대신 배합을 해주니 훨씬 편해졌습니다."
경북 문경의 작은 농공단지. 단무지 특유의 새콤한 향이 퍼지는 공장 안에서 만난 한 직원은 달라진 현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들이 삽과 바가지를 들고 무와 양념을 섞은 뒤, 다시 바가지로 퍼 담아 포장지에 넣는 모습이 일상이었다.
무거운 상자를 수작업으로 옮기느라 허리·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 배합기와 자동 계량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람 손이 덜 닿으면서 품질이 균일해지는 동시에 위생과 효율은 높아졌다.
자연그린은 2004년 설립된 단무지 전문 제조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99억원에 육박했으며, 국내 단무지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이다.
하지만 자연그린 역시 문경 지역 인구 감소, 외국인 노동력 의존, 근골격계 질환 위험 같은 한국 제조업 전반의 구조적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생산 현장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던 차에 삼성전자의 '스마트공장 지원사업'과 인연을 맺으며 본격적인 혁신이 시작됐다.
첫 번째 단계는 외포장 공정 자동화다. 올해 3월 팰리타이징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하루 생산 능력이 1800상자에서 2500상자로 39% 증가했다. 상자 운반 시간은 건당 8초에서 5초로 줄어 효율성이 38% 개선됐다. 463㎡(약 140평)였던 포장 공간은 198㎡(약 60평)로 축소돼 265㎡(약 80평)를 절감하는 효과도 얻었다.
작은 변화의 성과는 현장 곳곳에서 나타났다. 종류만 33가지에 달하던 상자를 4종으로 표준화해 관리 부담을 줄였다. 김밥용 단무지와 맛 단무지가 뒤섞이던 라인은 전용 라인으로 분리해 불량률을 낮췄다. 금속 검출기를 외포장에서 내포장 구역으로 옮겨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에 맞췄다. 지게차와 직원이 함께 드나들어 위험했던 입구는 출입구와 동선을 분리해 안전성을 높였다.
두 번째 단계는 조미 공정 자동화다. 이전에는 직원들이 커다란 삽으로 양념을 퍼 담아 무와 섞어야 했다. 똑같은 동작을 수십 차례 반복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었고, 섞는 강도나 속도에 따라 제품의 맛과 품질에 편차가 발생했다. 이제는 자동 배합기가 일정한 속도로 양념을 섞어 품질이 안정됐고, 직원들의 노동 부담도 줄었다.
김경범 자연그린 대표는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작업을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갔다"면서 "기계가 대신하면서 품질이 고르게 유지되고 직원들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포장 공정도 혁신됐다. 과거에는 직원이 바가지로 단무지를 퍼 담아 포장지에 넣었지만, 지금은 자동 계량기가 정량을 맞춰 바로 투입한다. '사람 손이 닿을수록 식품은 비위생적'이라는 약점을 자동화로 보완하면서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식품 제조 위생 환경을 구축하게 된 셈이다. 자연그린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개선 과제 총 95건을 발굴해 전부 완료했다.
회사는 이를 위해 약 5억원을 투자했다. 혁신에는 출입문 명판을 부착하고 구역 표시를 정비한 작업, 대형 절임통 배수 공정 효율화, 김밥 단무지 전용 라인 구축, 설비와 구역별 표준화 등이 포함됐다. 직원들은 "작업 시간이 절반 가까이 단축됐고, 바닥 오염과 혼입 사고도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생산 효율뿐만 아니라 안전·위생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경은 인구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돼 젊은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김 대표는 "사람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동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며 "여성 친화 기업으로서 지역 여성과 청년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회사는 HACCP 인증을 추진 중이다. 매출 규모가 100억원에 근접하면서 법적으로 인증이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장 리모델링까지 단행했다. 인증을 받게 되면 삼성웰스토리, 학교 급식, 군납 등 대형 급식 시장으로 판로 확대가 가능해진다. 회사는 3년 내 매출 2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단무지 제조를 '반도체 공정'에 빗댄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자동화, 오차 없는 계량, 위생 극대화라는 시스템을 통해 '반도체처럼 단무지를 만들어보자'는 구호를 현실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회사 경영의 지향점이다.
향후 계획도 준비돼 있다. 기후변화로 원재료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계약재배 농가를 전국 10곳으로 분산했고, 스마트팜 도입도 검토 중이다. 단무지에서 추출한 유산균과 비타민을 활용한 기능성 식품 개발, 1인 가구를 겨냥한 소포장·현대적 패키지 디자인 출시 등 신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회사를 유지·발전시키려면 최고 시설에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며 "스마트공장은 우리 단무지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문경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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