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SBI 인수 눈앞
# 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요즘 저축은행 인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대출 비교, 간편 송금, 디지털 가계부 등 편리한 서비스로 수백만 사용자를 모았지만, 성장 한계가 명확했다. 플랫폼 중개 수수료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벅찼고, 비슷한 서비스가 난립하며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그가 내린 결론은 ‘직접 플레이어’가 되는 것. 저축은행 인수를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회사 운명을 바꿀 ‘퀀텀 점프’의 기회로 보고 있다. 예금을 받아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하고, 그 돈으로 직접 중금리 대출 시장에 뛰어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가 투자사 문을 계속 두드리며 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추가 투자 유치에 나선 이유다. 이는 단지 한 회사 얘기가 아니다. 금융업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 새로운 강자로 도약하려는 핀테크 업체 열망이 부실 매물이 쏟아지는 저축은행 M&A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이 사실상 교보생명 품에 안기면서 저축은행 업권의 지각변동이 본격화했다. 교보생명은 일본 SBI홀딩스가 보유한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내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약 9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번 M&A 발표를 전후해 자산 1위 ‘왕좌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OK저축은행은 교보 M&A에 자극받은 듯 상상인·페퍼저축은행을 한번에 인수하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가격 조건 등 여러 이유로 고배를 마셨지만 향후로도 계속 M&A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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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매물 왜?
PF 부실 심화…정부도 장려
저축은행 업계는 2022년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지방을 거점으로 둔 중소형사 재무 건전성이 크게 악화되며 M&A 시장의 ‘큰 장’이 열릴 토대가 마련됐다. 금융당국이 부실 저축은행의 질서 있는 정리를 위해 한시적으로 M&A 규제를 완화한 것도 기폭제가 됐다. 동일 대주주 보유 한도를 2개에서 3개로 늘리고, 금융지주사 인수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업계 재편의 문을 열어줬다.
상속·증여 문제로 가업 승계가 어려운 개인 대주주 소유 저축은행도 잠재적 매물로 거론된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이 “팔고 싶어 하는 저축은행이 많다”고 언급했듯, 약 30여개에 달하는 개인·가족 지분 회사들이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건전성이 비교적 양호한 알짜 매물까지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9월부터 시작되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도 M&A를 더욱 자극하는 요소다.
저축은행은 예금자보호한도가 올해 9월부터 종전 5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으로 올라간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로 저축은행 업권 전체에 최대 25조원에 달하는 신규 예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잠재 매수자 입장에서 이 같은 정책은 M&A를 통해 시장에 진입할 ‘기회’로 해석된다. 잠재 매수자들은 위기에 몰린 중소형 저축은행을 저렴하게 인수한 뒤 자본을 투입하고 자사 브랜드와 디지털 역량을 결합해 ‘안전하고 혁신적인 은행’으로 탈바꿈시킬 전략을 그린다. 이를 통해 신규 유입되는 예금을 흡수하겠다는 계산이다.
SBI저축은행 인수를 추진 중인 교보생명. (매경DB) |
새로운 매수자 누구?
종전 강자 핀테크 다크호스
업계에서는 최근 분루를 삼킨 OK저축은행 외에 저축은행 계열사가 없는 금융지주, 인터넷은행 등이 인수전에 참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더해 다크호스로 떠오를 곳으로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꼽힌다. 마이데이터·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법) 사업자, 그리고 대출 비교 플랫폼 등이다. 이들에게 저축은행 인수는 기존 사업 한계를 뛰어넘어 수익 모델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자를 예로 들면, 여러 금융사에 흩어진 고객의 금융 정보를 통합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핵심이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만으로는 수익 창출에 한계가 뚜렷하다. 저축은행을 품에 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초개인화된 금융 상품을 직접 선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의 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해 해외여행 지출이 잦은 고객에게는 환전 우대 기능이 포함된 예금 상품을 추천하고, 통신비나 공과금 납부 실적이 우수한 ‘씬파일러(금융 이력 부족자)’에게는 자체 대안신용평가모형(ACSS)을 적용해 중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식이다. 고객 소비 패턴에 맞춰 ‘자동차 구매 목적 자금 모으기’ 같은 목표 기반형 적금 상품을 설계해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온투법) 사업자에게도 저축은행 인수는 기회다. 이들은 투자자와 대출자를 온라인에서 연결하지만, 개인 투자자 모집에 의존하는 자금 조달 구조는 항상 불안정했다. 저축은행의 수신 기능을 확보하면 상황이 180도 바뀐다. 예금을 통해 저비용으로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돼 개인 신용대출 사업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개인사업자(SOHO) 대출, 부동산 담보대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등 더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금융 영역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발판도 마련할 수 있다.
대출 비교 플랫폼에 저축은행 인수는 ‘수직 계열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다. 현재는 여러 금융사 상품을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데 그치지만 직접 저축은행을 소유하면 단순 중개자를 넘어 대출을 실행하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어서다. 플랫폼에 쌓인 막대한 대출 신청 데이터를 활용해 가장 경쟁력 있는 자체 ‘PB(Private Brand)’ 대출 상품을 만들어 주력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는 덕분이다. 고객이 기존 플랫폼 앱 내에서 대출 비교부터 심사, 실행까지 모든 과정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만큼, 업체 입장에서는 이탈률을 줄이고 고객을 생태계 안에 묶어두는 ‘록인(Lock-in, 자물쇠)’ 효과도 극대화된다. 대출 실행 이후에는 예·적금 상품이나 제휴 카드 발급을 교차 판매하며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실제 이런 논리로 핀테크 스타트업이 추가 투자 유치를 위해 금융사와 접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귀띔했다.
변수는 없나
경영 정상화 노력이 우선
저축은행 M&A 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가장 큰 변수는 매물로 나온 저축은행 자체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다. M&A 규제 완화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며 업황 회복을 통한 매물의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OK금융그룹의 연쇄 인수 협상이 결렬된 핵심 원인 역시 가격 이견 이전에 매물의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인수자 입장에서 높은 부실 채권 비율과 PF 잠재 리스크를 안고 있는 저축은행에 제값을 주기는 어렵다.
반면 올해 유일한 ‘빅딜’이었던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는 매물 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SBI저축은행은 고정이하여신비율 6.3%, BIS자기자본비율 17.81% 등 업계 최고 수준 건전성을 갖췄고, 지난해 대규모 부실채권(NPL) 매각을 통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처럼 우량 매물만이 M&A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본격적인 M&A 활성화는 저축은행 업계의 자구 노력에 달려 있다. 업계는 하반기 ‘5차 PF정상화펀드’를 통해 최대 1조원 규모 부실채권 정리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PF 부실을 상당 부분 털어낸 뒤 내년 시장 금리 인하로 조달 비용까지 절감되면, 그때부터가 진짜 M&A 시장이 열리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5호 (2025.09.03~09.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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