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 연쇄 접촉으로 보통 국가 연출
북중러 3자 연대, 회담 개최가 관건
북중관계 회복 뚜렷...'안러경중 시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김정은 당 총비서(국무위원장)가 중국 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쇼전쟁승리(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일 전용열차로 출발해 2일 새벽 국경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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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리는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주요 외빈으로 등장한다. 김 위원장의 다자 외교 데뷔인 동시에 북중러 3국 정상의 첫 집결이 이뤄지는 점에서 신(新)냉전 시대의 심화를 알리는 상징적 장면들이 포착될 예정이다. 특히 핵 개발 문제로 국제적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했던 김 위원장으로선 우방국들과의 친선을 도모, '보통 국가 지도자'라는 이미지 연출에 주력할 전망이다.
다자 외교로 국제 외톨이 탈출 시도
3일 열리는 열병식 전후 김 위원장의 동선은 주변국 정상들과의 여러 양자회담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약 6년 만의 방중인 만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략적 이해까지 공유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도 이뤄질 전망이다.
사회주의 진영 국가인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 쿠바는 물론 우방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이란 정상도 이번 열병식에 자리한다. 외교가에선 김 위원장이 중러뿐 아니라 다른 우방국 정상과 연쇄 접촉을 시도하며 외연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핵 개발을 거듭해온 북한의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는 '제재 대상'이자 서방 진영의 '공공의 적'과 다름없었다. 김 위원장으로서 이번 열병식은 우방국들과의 정상적인 외교를 통해 다른 국가 지도자와 다름없는 '보통 국가'의 지도자라는 점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다. 김 위원장과 동행한 최선희 외무상이 각국과의 외교장관 회담에 나설 수도 있다.
한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일 "불량 국가의 탈을 벗고 폐쇄적인 체제의 지도자라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씻는 게 김정은의 노림수"라고 짚었다. 또한 "정상적인 다자 외교를 벌이면 핵보유국 지위도 암묵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라며 "철저하게 국익을 신장하기 위한 '진영 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일 보란 듯 북중러 3국 정상회담 여나
2019년 6월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금수산영빈관에서 함께 산책하고 있는 모습.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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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3국 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이번 열병식의 외교 무대 격인 톈안먼 망루에는 시 주석의 좌우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나란히 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중러 3각의 반미 연대감' 과시 목적으로 철저하게 짜여진 의전으로 보인다.
단, 3국 정상회담 여부는 불투명하다. 단순한 '3국의 연대 연출'과 '안보 협력'을 의미하는 3국 정상회담의 외교적 무게는 다르다. 북중러 간 구체적 협력은 한미일 3각 협력을 포함한 서방의 대(對)중국 견제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3국 정상 간 공식 회담에는 미온적일 것이란 관측이 많다. 국정원은 2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이) 당장 실질적인 북중러 3자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북중관계 회복...'안러경중' 시대 문 열려
이에 비해 '북중관계 회복' 신호는 뚜렷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밀착세를 과시했던 양국관계는 북러 간 군사 교류 심화 흐름과 반비례로 악화해 왔다. 6년 만에 이뤄지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관계 회복 필요성이 커졌다는 북중 정상 간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전승절을 기점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감했던 북중 간 물적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고 한동안 뜸했던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 흐름도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공개한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80주년 참석 의도와 파장' 보고서에서 "군사 분야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지속하며 경제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북한판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와, 경제는 중국과 각각 밀착) 전략을 북한이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김정은과 '구면' 우원식 주목
6년 만에 중국 방문에 나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국무위원장)가 탑승한 특별열차가 베이징역 도착이 예정된 2일 중국 베이징역 앞 펜스에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베이징=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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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열병식에는 한국 측 대표 격으로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한다. 한중의원연맹 소속 박지원·김태년·박정·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동행한다. 특히 우 의장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만찬장에서 김 위원장과 술잔을 주고받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남북 간 조우를 기대해봄직 하지만 정부 내에선 기대감을 감추는 표정이 역력하다.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다"며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측 태도를 고려하면, 톈안먼 망루에서도 교류 여지를 내주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남북 접촉) 가능성도 대비해 (우원식) 의장에게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드렸다"면서도 "지금으로서는 크게 희망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중러를 등에 업은 모습을 연출하는 게 김 위원장의 최대 목표인데, 남북 접촉으로 스스로 이 같은 그림을 흐리진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국정원도 "상대측에서 만남을 원한다면 조우가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의미 있는 만남은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을 이날 정보위에 보고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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