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회담… 관계 완전 복원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식 참석차 중국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대면 회담은 시 주석이 북한을 국빈 방문했던 2019년 6월 이후 6년여 만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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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저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북·중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대면 회담을 한 것은 시 주석이 북한을 국빈 방문했던 2019년 6월 이후 약 6년 3개월 만의 일이다. 두 정상은 회담 후 소규모 차담과 만찬도 함께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러가 밀착하면서 다소 소원해졌던 북·중 관계가 완전히 복원됐다는 신호탄이다.
시 주석은 전날 열린 중국 항일전쟁·세계반파시스트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했던 26국 정상 중에서 김정은을 각별히 대우했다. 시진핑은 이날 오전부터 낮까지 라오스·베트남·쿠바 등 여러 나라 정상과 연달아 양자 회담을 했지만, 김정은을 위해서는 따로 저녁 시간을 내서 만찬을 했다. 시진핑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도 김정은을 더 예우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일 열린 중·러 정상회담 후에는 오찬과 산책만 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시진핑은 “중조(中朝, 북·중)는 운명 공동체이자 서로 지켜주는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동지”라며 “전통적 우의를 고도로 중시하며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원한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이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이에 대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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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도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조·중(북·중) 간의 우호 감정은 변하지 않으며, 양국 관계를 끊임없이 심화·발전시키는 것은 북측의 확고한 의지”라며 “대만, 티베트, 신장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하고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정을 수호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 모두 ‘국제 정세 변화’를 거론한 것은 북·러 밀착 속에 앞으로 미·북 대화가 재개돼도 소통과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김정은은 “호혜적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해 더 많은 성과를 거두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이란 말처럼 러시아에서보다 많은 지원을 얻기 위해 중국과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대만 문제, 中 확고히 지지… 경협 심화하자”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손을 잡고 인사하고있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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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소통 강화’ 강조한 시진핑
시진핑은 이날 회담에서 “북측과 고위급 왕래 및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각급 교류를 밀접히 하며 각 분야의 실질적 협력을 전개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북·중 양국이 “국제 및 지역 사안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 간의 ‘전략적 소통’이란 정치·안보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결정과 현안을 사전에 통보 내지 협의한다는 뜻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중 간에는 냉전 시기부터 서로 중요한 사안은 사전에 통보해주는 전통이 있었다. 앞으로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진핑은 이를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김정은과 대화를 원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집권 1기 때처럼 북·미 정상회담 전 김정은이 자신과 협의하길 바랄 것이란 분석이다.
이날 회담에서 김정은은 “양국의 호혜적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해 더 많은 성과를 거두길 원한다”며 경제 지원을 요청했다. 김정은은 “시진핑 총서기의 강력한 영도 아래 중국이 위대한 발전 성취를 이뤘다”며 “당 건설과 경제 발전 등 분야의 경험을 교류하여 조선 당과 국가 건설 사업 발전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북한 측 이번 방중 수행단에는 군(軍) 인사가 없었고, 김덕훈 당 중앙위 비서 겸 경제부장이 포함됐다. 지난해까지 경제 수장인 내각 총리를 맡았던 김덕훈이 방중에 동행한 것은 북한이 중국과의 교역 확대와 중국의 경제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중 무역 총액은 21억8000만달러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북한이 최근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활성화도 러시아 관광객만으로는 역부족으로 중국 관광객 유치가 꼭 필요하다. 북한 노동자의 중국 파견도 북한 경제에는 핵심적인 문제다.
이에 대해 시진핑은 “중국은 변함없이 북한이 자국의 국정에 맞는 발전의 길을 걷는 것을 지지하며, 북한 사회주의 사업의 새로운 국면을 계속 열어나가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북·중 간의 무역, 에너지, 관광 등의 교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회담 후 전용열차로 베이징을 출발하기전 배웅나온 중국정부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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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 플랫폼 협력 강화도 거론
북·중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고, 중국 측은 ‘평화와 안정’을 강조했다. 시진핑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일관되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북한과의 조율을 강화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북측은 조선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공정한 입장을 높이 평가한다”며 “유엔 등 다자 플랫폼에서 계속 협력을 강화해 쌍방의 공동이자 근본적인 이익을 지켜나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일차적으로는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 등이 없도록 중국이 지지해 달라는 취지지만, 다자 외교에 데뷔한 김정은이 유엔 총회나 다른 다자 무대에 등장할지 주목된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회담을 통해 시 주석은 미국을 향해 ‘북한을 내 편으로 끌어들였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북한이 러시아에 너무 경도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북·중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를 보였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도 사실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 시점을 잡아야 하는데 중국이 ‘반미 연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자신의 몸값이 가장 높을 때 중국에 갔다”고 말했다.
4일 오후 평양으로 떠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배웅나온 중국정부 인사들. 저 뒤로 역사 시계(점선)가 오후 10시 2분 40초를 가리키고 있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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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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