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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미국인 채용 늘리라는 메시지”…대미투자 위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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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LG엔솔 등 기업들 美 출장 중단

    트럼프 “이민법 존중…현지인 채용해야”

    산업계 “인건비 부담에 채용 쉽지 않아”

    전문직 취업비자 H-1B ‘하늘의 별따기’

    헤럴드경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배터리셀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벌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고, 현지 출장자의 경우 업무 현황 등을 고려해 즉시 귀국 또는 숙소에 대기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근로자들이 아이오닉 5 차량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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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이민 당국이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배터리셀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이민단속을 벌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으름장에 현지 투자를 대폭 늘렸지만, 미국 정부가 반이민 정책 아래 입국 요건을 갈수록 옥죄고 있어 비자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향후 이 같은 사례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번 사태가 사실상 미 정부가 현지 인력을 자국인 채용으로 전환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기업들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민소득을 비교했을 경우 인력 관련 비용이 2배 이상 늘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8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미국 출장을 앞둔 직원들에 출장 일정을 전면 취소하라고 공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고, 현지 출장자의 경우 업무 현황 등을 고려해 즉시 귀국 또는 숙소에 대기하도록 하는 임직원 지침을 내렸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미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본사 직원들의 미국 출장 일정을 전면 취소하거나 현지에 있는 출장자들에게 숙소 대기 또는 귀국 조치를 내리는 등 잇따라 비상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셀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 대한 이민 단속 작전을 벌인 데 따른 조치다. 이번 기습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해 475명을 체포·구금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미국 이민 당국의 단속과 관련해 한국 기업의 미국 근로자 고용 확대를 압박하기 위한 경고성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 기업에 미국의 이민법을 존중해 주길 요청한다”라며 “기술력을 갖춘 뛰어난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영입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배터리 산업을 예로 들면서 “미국 정부는 여러분이 이를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 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인력이 없다면, 전문가를 불러들여 우리 국민을 훈련시키고, 그들(미국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이민단속의 ‘제보자’라고 주장하는 조지아주 기반 정치인 토리 브래넘도 현지시간으로 지난 6일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줬지만, (4일 불법체류 및 불법고용 단속의 대상이 된) 한국 기업들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조지아 주민을 (거의) 고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에 합법적인 비자를 발급받거나 혹은 현지에서 대체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선택지가 남았지만, 이럴 경우 사실상 공사 기간 지연 및 인건비 상승 등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000달러로 미국의 절반수준”이라며 “현지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단순히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을 넘어 현장 상황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숙련도를 갖추게끔 교육 과정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공사 기간 연장 등 부작용이 불가피하다”라고 우려했다.

    산업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노골적인 관세 압박에 대규모 추가 투자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초유의 대대적인 이민 단속의 타킷이 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031년까지 8500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2023년 하반기 지분 50%씩 총 43억달러(약 6조원)를 들여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브라이언 카운티에 배터리셀 합작공장 공사를 시작했다. 합작공장은 연산 약 30기가와트시(GWh), 전기차 약 30만대 분의 배터리셀을 양산할 수 있는 규모로 올해 말 완공할 예정이지만, 이번 이민 당국의 단속으로 공장 건설은 전면 중단됐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기지를 세우고 있는 다른 기업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과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건설도 앞두고 있다.

    문제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미국 비자 제도가 10년이 넘도록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셀 합작 공장에서 체포된 이들은 대부분 회의 참석이나 계약 등을 위한 비자인 B1 비자나,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소지한 채 현지에서 일을 하다 ‘체류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단속의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B-1 비자는 상업·산업 노동자들의 장비·기계의 설치·작동·보수 및 현지 직원 교육에 활용될 수 있으나, 실제 건설 작업 수행은 불가하고 급여도 미국 내 사업체에서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정부가 비자제도 개선을 위해 미국 정부와 지속해서 협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실제 정부는 정보기술(IT) 전문가 등 전문직 종사 외국인에게 추첨제로 주어지는 비이민·취업 목적의 H-1B 비자 확대를 위해 오랫동안 미측과 협의를 이어왔지만, 성과는 없었다. 현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캐나다·멕시코는 비자를 무제한, 호주는 매년 1만500개, 싱가포르는 5400개, 칠레는 1400개의 비자를 받고 있지만, 한국은 쿼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이민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면, 관리자급 주재원비자(L1)나 전문직 취업 비자(H-18) 등이 필요하지만, 이를 획득하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라며 “이미 B1 또는 ESTA로 미국에서 단기로 일을 하는 구조가 관행처럼 굳어진 상황에서 미국 비자 제도 개선 없이는 제2, 제3의 대규모 구금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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