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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제라드, 루니… 게임 속 ‘우리팀’ 상암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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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전설들에 10대 팬 열광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6만4800여 명의 만원 관중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손흥민이 뛰는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도, FC바르셀로나 같은 유럽 명문 클럽의 친선 경기도 아니었다. 국내 게임사 넥슨이 주최한 이벤트 경기 ‘아이콘 매치’가 열린 날. 입장권(4만9000~45만원)은 지난달 예매 시작 2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올해 2회째인 아이콘 매치는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선수들이 공격수 팀 ‘FC스피어(창)’와 수비수 팀 ‘실드(방패) 유나이티드’로 나눠 치르는 특별 경기다. 티에리 앙리(48·프랑스)와 디디에 드로그바(47·코트디부아르), 리오 퍼디낸드(47·잉글랜드), 카를레스 푸욜(47·스페인) 등이 2년 연속 서울을 찾은 가운데 호나우지뉴(45·브라질)와 스티븐 제라드(45·잉글랜드), 잔루이지 부폰(47·이탈리아) 등이 새롭게 합류해 선수진이 한층 화려해졌다.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이 스피어, 라파엘 베니테스 전 리버풀 감독이 실드 지휘봉을 잡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해외 레전드 25명의 전성기 시절 몸값을 모두 합치면 1조4000억원을 웃돈다.

    2000년대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스타들에게 가장 뜨겁게 환호한 이들은 정작 전설들이 활약한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중학생 박재현(13)군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앙리”라며 “드리블을 앞세운 화려한 개인기로 골을 넣어 정말 멋있다”고 했다. 앙리가 마지막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른 것이 2006년인데 그로부터 6년 뒤 태어난 박군이 앙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온라인 축구 게임 때문이다. 박군의 아버지(44)는 “아들이 나랑 동년배인 선수들에게 열광하는 게 신기하다”며 “축구 스타 선수들을 매개로 아들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이날 아이콘 매치 관중 상당수는 10대 축구 팬들이었다. 게임 캐릭터로만 접한 ‘축구 전설’들을 직접 볼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예매 전쟁’을 뚫고 달려온 것이다. 넥슨의 간판 게임 ‘FC 온라인’과 ‘FC 모바일’(스마트폰 버전)은 이용자 절반 가까이가 10대일 정도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원하는 축구 클럽을 골라 팀을 이끄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현역 선수뿐만 아니라 과거 활약했던 은퇴 선수까지 영입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EPL 지난 시즌 우승팀 리버풀을 고르면 현재 간판 골잡이인 모하메드 살라흐(이집트)와 함께 팀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제라드(2016년 은퇴)까지 한 팀으로 구성할 수 있다.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선 옛 전설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경기장 앞은 오후 2시 무렵부터 북새통을 이뤘고, 유니폼과 키링 등을 판매하는 매장엔 앳된 얼굴의 중·고등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대구에서 온 초등학교 6학년 김민성군은 웨인 루니(40·잉글랜드)의 유니폼을 고른 뒤 “게임에서 처음 접한 선수였는데 아빠가 알려준 유튜브 옛날 영상을 보고 완전히 팬이 됐다”고 했다.

    추억에 젖는 팬도 많았다. 성남에서 왔다는 서른 살의 한 팬은 “고등학생 때 첼시를 응원하며 샀던 드로그바 유니폼을 10년 만에 꺼내 입었다”며 웃었다. 아버지와 함께 온 청소년 팬은 호나우지뉴의 바르셀로나 시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넥슨 관계자는 “축구 게임이 세대 간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은퇴한 선수들의 경기에 6만명이 몰린 것은 세대를 아우르는 축구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날 축구의 전설들은 현역 때 못지않은 열정을 보였다. 0-0 공방이 이어지던 후반 27분 스피어 공격수 루니가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선제 골을 넣자, 후반 38분 실드 수비수 이영표가 올린 크로스를 마이콘이 헤더로 동점을 만들었다. 종료 직전 실드 소속 박주호가 골키퍼와 1대1 찬스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에 승리를 안겼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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