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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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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처리는 기본, 수출 길까지 뚫어준다는데”...그가 말하는 ‘진짜 무역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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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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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폭풍으로 글로벌 무역 판도가 180도 달라지면서 한층 더 무거워진 부담이 장영진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 사장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초고율 관세와 무역장벽이 수출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의 ‘최후의 보루’로서 무역보험공사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무역보험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그동안 ‘사고 처리’에만 머물렀던 무역보험의 기능을 ‘수출 선봉장’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며 “수출에 따르는 리스크를 분담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수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국내 기업들의 수출 기회를 늘리는 일이 새로운 시대에 무역보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무역보험제도는 일종의 ‘자동차보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수출 기업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출한 뒤 바이어가 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보험금으로 수출대금을 대신 지급하고 채권 추심 등과 같은 관련 문제를 처리하는 식이다.

    장 사장은 무역보험을 통해 기업보다 먼저 수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해외 발주처에 사전에 금융 지원 한도를 부여하는 ‘사전금융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발주처의 금융 지원에 대한 목마름을 사전에 해결하고, 국내 수출 기업들의 판로를 개척해주는 효과가 있다.

    무보는 올해부터 사전금융한도 발주처를 기존 공공 부문에서 우량한 민간 부문으로 확대해 우리 기업의 수주 기회를 늘리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캐나다 최대 통신사 ‘벨 캐나다’에 7억달러 규모의 금융 지원을 단행했고, 벨 캐나다는 무보의 금융 지원을 통해 조달한 자금 전액을 삼성전자 통신기기 구매에 활용할 예정이다.

    장 사장은 “우량 발주처에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주는 것과 같은 형태이고, 산업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금융 제공으로 경쟁력을 높여 우리 기업의 수주기회를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루마니아와 인도 등 발주처에서도 사전금융한도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달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된 장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줄곧 임직원에게 “공기업 마인드를 버려야 산다”고 강조해왔다. 수출 기업들이 무역보험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 일환으로 그는 시장과 기업이 요구하는 것이 있으면 보험료율과 보증한도 등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라는 주문을 지속해왔다.

    장 사장의 이 같은 원칙이 반영된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특례보증이다. 기술력이 있고 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대규모 설비 투자등으로 부채비율이 높아 기존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됐던 기업들을 무역보험이 지원하는 형태다.

    실제 지난 6월 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기 제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에 무보는 47억5000만원의 특례보증을 지원했다. 이 회사는 디스플레이업계 불황과 환손실 등으로 3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었다. 무보는 기술력과 수출 계약 규모 등을 감안해 보증을 지원했고, 이를 기반으로 해당 회사는 원자재 구매 자금을 대출받아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제조사 BOE 등 글로벌 디스플레이 기업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장 사장은 “1년 매출액보다 더 큰 수출 계약을 체결하고서도 시중 금융권으로부터 시설자금이나 운전자금을 대출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기업이 많이 있다”며 “이는 과거 실적과 재무제표 위주로 심사하는 제도권 금융기관 특성상 기업에 대한 대출이 위축돼 나타나는 일종의 ‘돈맥경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장 사장은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제도권 금융의 공백을 메우는 ‘생산적 금융’ 공급에 무보가 앞장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보는 지난해 100억원 수준이었던 특례보증 규모를 올해 2000억원으로 대폭 늘릴 예정이다.

    장 사장은 남은 절반의 임기 동안 금융권과 산업계 협업을 통해 국내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미국발 관세 압력을 완화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첨단 제조업 부상과 맞물려 한국 제조 수출 경쟁력이 뒤처지지 않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미 기반은 조성된 상태다. 지난 5월 무역보험법 시행령 개정으로 은행과 기업이 무역보험기금에 출연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민간 기업 최초로 현대차가 기금을 출연해 중기 자동차 부품 협력사에 6300억원 규모의 ‘수출공급망 강화보증’을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12일에는 HL그룹이 하나은행과 손잡고 자동차 부품업계를 위한 기금 출연에 나섰다.

    장 사장은 “현대차가 시작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모델은 디스플레이와 조선, 철강 등 다른 업종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 관세 등 통상 환경 급변에 따른 수출 위기와 공급망 재편으로 자금난을 겪는 협력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되고, 우리 산업 공급망의 전체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사장 앞에는 또 다른 큰 숙제가 놓여 있다. 지난 7월말 한미 무역합의로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미국 측에 약속했는데, 투자액 중 상당 부분이 수출 보증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무보가 대미 투자 프로젝트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장 사장은 “보증 수요 증가에 대비해 지난달 해외 프로젝트 보증 전담 부서를 2개로 늘리고, 내년 보험 한도와 재원 한도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대미 투자 내용이 구체화되면 관세협상 이행에 차질이 없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영진 사장 = △1966년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합격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정책국장 △2018년 주미대사관 경제공사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실장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2024년 3월~현재 제12대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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