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귀멸의 칼날
韓-日 악귀 소재로 흥행 ‘쌍끌이’
퇴마록도 애니로 리메이크 흥행
서점가에 다시 30년전 소설 등장
서양 빌런보다 동양 도깨비 인기
(왼쪽부터) ‘퇴마록‘의 박신부, ‘귀멸의 칼날’의 렌고쿠, ‘케데헌’의 루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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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의 ‘퇴마록’ 이후 30년만에 문화계에서 ‘퇴마’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넷플릭스가 케이팝 걸그룹을 소재로 만든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주제곡 ‘골든(Golden)’과 함께 세계적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람을 먹는 ‘혈귀’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귀칼): 무한성편’은 국내 관객 462만 명을 넘겼다. 소설 퇴마록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만화영화 ‘퇴마록’도 앞서 인기를 끌며 서점가에 30년만에 원작 소설을 다시 불러냈다.
그간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서사의 콘텐츠는 아이언맨, 배트맨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마블과 DC(디씨)가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악역 역시 ‘빌런’이라 불리는 초능력자나 외계인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악당의 자리를 도깨비, 저승사자, 오니(일본의 ‘도깨비’로 국내선 ‘혈귀’로 번역)가 차지했다. 권선징악, 의인이 악당을 무찌르는 서사의 콘텐츠 역시 한국, 일본 등 동양 서사물이 오히려 인기를 끌고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음반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 빌보드 예고 기사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가상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곡 ‘골든’은 최신(9월 20일 자)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를 기록하는 한편 가상 K팝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부른 ‘유어 아이돌’과 ‘소다 팝’은 각각 4위와 5위에 올랐다. K팝 앨범이 빌보드 메인 차트를 동시에 차지한 건, 2020년 12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앨범 ‘비’(BE)와 타이틀곡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이 1위를 차지한 이후 처음이다. 2025.9.16/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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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처음으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오징어 게임’마저 제쳤다. 누적 시청 수 2억6000만 회를 넘은 2위 ‘오징어 게임 시즌1’과의 격차를 더욱 벌릴 것으로 예상된다.
극장판 귀멸의칼날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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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귀칼도 한국에서 46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일 현재 기준 누적 관객 수는 462만 8393명으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에서 ‘스즈메의 문단속’(558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90만 명)에 이어 현재 3위다. 아직도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2위여서 순위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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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퇴마록도 올해 2월 영화관에서 개봉한 뒤 예상을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이달 3일부터는 OTT서비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됐다. 공개 첫주에 ‘오늘 한국의 TOP 10’ 1위에 올랐다.
원작 소설 퇴마록은 1993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돼 1990년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서울대 공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소설가 이우혁 씨가 한국과 동양의 전설, 신화 등을 소재로 4명의 퇴마사가 악귀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서사를 구축했다.
소설 퇴마록은 한국 오컬트, 한국 영웅물의 시초로 꼽히기도 한다. 당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됐으나 소설과 내용이 많이 달라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원작자 이 씨도 불만을 표한 일화가 있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기대 이상으로 원작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특별 프로그램인 ‘동네방네비프’에도 공식 초청됐다.
한물 지난 줄 알았던 퇴마 콘텐츠의 인기에 30년전 소설이 다시 서점 매대에 깔리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소설 퇴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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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다시 출간된 퇴마록 개정판 1권은 1990년대 10대를 보낸 40대 독자들의 지지를 받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했다. 판타지물인 퇴마록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장르 소설로, 1994년 첫 단행본이 나온 이래 10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케데헌, 귀칼, 퇴마록 등 한국, 일본, 동양의 퇴마 콘텐츠는 서양의 ‘어벤져스’ 부류와는 다소 다른 점들도 있다.
서양물은 대부분의 ‘빌런(악당)’이 초능력을 가진 초인이거나, 지구 밖의 외계인, 외계 생명체다. 반면 동양은 상당 부류의 악당이 ‘이미 죽은 존재’다. 죽어서 귀신이 됐거나, 악령이 됐거나, 저승사자가 됐거나 하는 이들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귀칼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혈귀 역시 한때 산 사람이었으나 혈귀에게 죽임을 당한 뒤 똑같은 혈귀가 된 이들이다.
이는 삶과 죽음, 생(生)과 사(死)에 대해 서양과는 다른 가치, 관념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서양에서는 ‘죽음=끝’이지만 동양에서는 죽은 뒤에도 그 영혼, 혼령이 산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셈이다. 그래서 장례 풍습, 제사, 무당과 토속신앙 등도 암암리에 퇴마 콘텐츠 속에 자리잡은 경우가 많다.
정봉오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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