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공항 부재로 현지 유럽 대사관은 불가
미국 거부로 '유엔 정식 회원국' 격상 힘들어
동력 상실한 '2국가 해법'에 힘 실리는 효과
22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가자지구에서 살해당하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지지하고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토리노=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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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캐나다에 이어 프랑스까지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면서 그 실효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소극적이었던 주요7개국(G7) 소속 서방국가들이 대거 국가 승인 움직임에 합류,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받아들인 나라가 150개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193개 유엔 회원국 중 4분의 3에 해당한다.
당장 기대되는 변화는 유럽 각국에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날 런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대표부에 국기가 게양된 가운데 영국 정부는 대사관 승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베트 쿠퍼 영국 외무장관이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영국에 대사관과 대사를 둘 수 있다”고 밝힌 것.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 포르투갈, 캐나다, 호주에서도 실현 가능한 장면이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현재 격화하는 가자지구 분쟁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이라는 게 외신의 대체적 평가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공세가 더 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이스라엘 국무위원들은 전날 “영국과 다른 나라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서안지구 합병을 즉시 단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경도, 공항도, 유엔 투표권도 없는 팔레스타인
19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공동 급식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구호 음식을 받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칸유니스=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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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회의론에는 현실적 제약이 반영됐다. BBC는 이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의 오랜 분쟁으로 국제적으로 합의된 국경도, 수도도, 군대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경통제권이 없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국가 간 양자관계를 수행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팔레스타인에 공항이 없다”는 점을 거론했다. 내륙에 위치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을 통하거나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국경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서방이 팔레스타인에 외교관을 자유롭게 파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유럽 각국에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설치하는 건 가능하지만 반대로 팔레스타인 영토에는 대사관 지위를 가진 서방의 공관을 세우는 건 불가능해진다.
팔레스타인이 내부적으로 분열된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PA가, 가자지구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각각 통치 중이다. 4분의 3에 달하는 유엔 회원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지만, 유엔 정회원국으로 지위가 격상될 가능성도 낮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를 승인해야 하는데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가 뻔해서다.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하마스의 테러행위에 보상을 주는 행위”라며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공개 반대하고 있다.
동력 상실한 ’2국가 해법’ 살리는 효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팔레스타인 사안의 평화적 해결과 두 국가 해법 실행을 논의하는 고위급 국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프랑스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승인했다고 밝혔다. 뉴욕=신화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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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2국가 해법’에 힘이 실리는 효과는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 국가로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국제적으로 공식화된 분쟁 해결책이다. 그러나 당시 협정문에 서명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2년 뒤 암살되고 2009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집권하면서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면서 “우리는 2국가 해법을 살리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강조한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영국과 프랑스의 합류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4개국이 팔레스타인 지지 행렬에 동참한 것도 고무적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1988년에 이미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다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 등으로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은 답보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에 '경제적 불이익' 줄 수도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 영국 총영사를 지낸 빈센트 빈은 로이터에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서방이 이스라엘 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며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 내 정착촌에서 생산된 제품을 보이콧하는 조치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스라엘과의 무역을 축소해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행보가 이스라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편 이날 이탈리아 전역에선 노동자와 시민 수만 명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24시간 총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영국, 프랑스와 달리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소극적인 이탈리아 정부를 규탄하는 차원이다.
베를린=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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