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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재난의 압도적 슬픔 이후에도, 우리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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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세상]
    루시 이스트호프, '먼지가 가라앉은 뒤'


    한국일보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 공격으로 세계무역센터 꼭대기 층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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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재난 복구 전문가인 루시 이스트호프의 에세이다. 부제는 '재난 복구 전문가가 전하는 삶과 희망'. 제목의 '먼지', 부제의 '삶과 희망'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는 어느 정도 추측 가능하다.

    재난 복구 전문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세상엔 온갖 전문가들이 있고, 너도나도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재난 복구 전문가는 사실 생경하다. 사전의 뜻을 빌려보자면, 재난을 복구하는 일에 종사해 그 분야에 있어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정도로 읽힌다.

    저자는 재난 복구 전문가를 "계단 밑을 청소하는 신데렐라 같은 존재"라고 소개한다. 구체적으론 재난 상황에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비상 계획'을 만들고, 재난 후에는 이에 대응하고 복구 경로를 설정하는 일을 한다. 재난 조사를 돕고, 시신안치소를 짓고, 신원 확인과 매장, 유류품이나 시신을 송환하는 절차를 감독하는 일 등이다.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활용해 다음 재난을 더 잘 대비하는 것" 또한 저자가 중요하게 꼽는 임무 중 하나다.

    책은 예상대로 저자가 20년 넘게 누빈 재난 현장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인도양 지진해일, 9·11 테러, 발리 폭탄 테러, 런던 7·7 테러, 그린펠타워 화재 등 "뉴스에 보도되기 전까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코 온화하거나 평화롭지 않은 죽음"이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찢어진 바지에서 발견된 영수증으로 아들이 그나마 아침(커피와 크루아상)은 챙겨 먹었단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는 9·11 테러 희생자 어머니의 사연, 23층 빌딩을 "하늘 위 불탄 성냥갑"으로 만든 2017년 그렌펠타워 화재 당시 "그대로 있으라"는 지시를 따랐다가 결국 주민 72명이 희생됐다는 얘기 등이 그렇다.

    저자는 이 같은 재난이 "그저 압도적"이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재난 복구는 잔해를 치우고 시신을 수습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지구력 경기에 가까운 것"이 바로 재난 복구이며, 이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자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설명을 차분히 이어간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재난은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와 우리 지도자들의 민낯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세월호와 이태원 등 참사를 연이어 겪은 우리가 한 번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끄는 대로 "희망과 재생과 웃음에 관한 책이자 사랑에 관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무너진 자리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일보

    먼지가 가라앉은 뒤•루시 이스트호프 지음•박다솜 옮김•창비 발행•364페이지•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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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상욱 엑설런스랩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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