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 쿠라스 감독의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영화사 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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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아돌프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살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베를린의 총통 관저 지하벙커가 히틀러의 최후 종착지였다.
바로 그날, 히틀러의 뮌헨 본가에선 한 장의 문제적 사진이 촬영됐다. 한 여성이 히틀러의 개인 욕조에서 목욕하며 찍은 '나체 사진'이었다. 히틀러의 사적 공간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단순한 기행(奇行)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 다시 평화가 왔다'는 함의를 담은, 자유와 해방의 증거였다.
이 사진을 찍은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종군 사진기자 리 밀러였다.
여성 종군기자의 생멸을 그린 신작 '리 밀러'를 비롯해 저널리즘 본질을 묻는 영화들이 속속 제작·개봉되고 있다. 가짜뉴스로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모호해져 언론의 위상이 수직 낙하한 오늘날, 저널리즘을 다룬 영화들은 '무엇을,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란 난제를 우리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배우 케이트 윈즐릿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리 밀러'에서, 리는 "여성은 종군기자가 될 수 없다"는 당대 관례를 깨고 지옥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갔다. 리가 처음부터 사명감에 가득 찬 건 아니었다. 패션잡지 '보그'의 모델이었다가 사진기자로 전향한 그는 연인 롤랑과 함께 뉴욕에서 런던으로 이주해 새 삶을 꿈꿨다. 하지만 유럽의 공포는 리를 누군가의 뮤즈로만 놔두지 않았다. 리는 아주 천천히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전장 사진을 보그에 전송하고자 고투한다.
비처럼 쏟아지는 폭탄, 얼어 죽지 않기 위한 사투, 혼란에 휩싸인 거리를 찍은 이미지가 리에게 처음부터 허락된 건 아니었다. 전장으로 떠나기 전 "네 부고기사를 먼저 써서 회사에 보내야만 따라갈 수 있다"는 조건이 붙기도 했다. 나치에 부역한 혐의를 받는 여성의 머리카락을 성난 군중이 밀어버리는 사진, 온 가족이 청산가리를 삼켜 떼죽음을 선택한 직후의 참상, 썩은 시취가 풍기지만 굳게 닫힌 홀로코스트 열차 풍경이 리의 앵글을 그렇게 스쳐갔다.
리는 서서히 의문을 품는다. 거리의 사람들이 실종돼 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나치의 이상에 반하는 자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이 영화는, 그들(유대인)이 어디로 갔는지를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극한의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평이했던 영화는 얼음으로 가득해진다. 리는 500마일(약 800㎞)을 달려 나치의 심장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죽음은, 전해 듣거나 상상한 것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다.
히틀러가 패망한 그날, 리는 찌든 몸으로 옷을 전부 벗고 히틀러의 욕조에 앉는다. 이 사진 한 장이 소속회사 보그에 실렸을 때 전 세계 독자가 느낄 안도감을 리는 계산한 것이었다.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의 '커버 업'. mk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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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휴대전화로 하루에도 수십 장씩 이미지를 생산·소비하는 이 시대에, 한 장의 이미지가 가진 힘의 본질을 영화 '리 밀러'는 사유케 한다. 사진 촬영은 단지 피사체를 인화지에 담는 단순작업이 아니라 공포에 찌들고 눈물 흘릴 힘조차 잃은 어린 아이와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는 고통을 통과해야 하는 일임을 영화는 말한다.
지난 8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에 초청돼 찬사를 받은 영화 '커버 업(은폐)'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전설적인 탐사보도 기자 시모어 허시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허시는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의 '학살·고문 스캔들'을 파고들어 일명 '외로운 늑대'로 불렸던 인물이다. 허시는 1969년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민간인 500명을 학살한 '미라이 사건'을 폭로해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고, 노년에 이른 2004년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고문 사건을 보도해 파장을 일으켰다. 아부 그라이브 사건이란 미군이 이라크 포로에게 전기 고문을 가하거나, 여성 군인들이 남성 포로를 성적으로 조롱했던 일을 말한다. 이 다큐멘터리엔 허시가 직접 등장한다. '커버 업'은 현재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100%를 받을 정도로 찬사의 중심에 서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스트링어: 그 사진은 누가 찍었나'는 사진 한 장을 둘러싼 진실과 허위, 격렬한 논쟁과 파괴적인 서사를 품은 영화다.
베트남전쟁 당시 네이팜탄의 공포에 질려 나체로 울며 뛰어가는 사진 한 장을 모두가 기억한다. 이 사진은 AP통신 소속 사진기자 닉 우트가 촬영했다고 알려져 있고 1973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영화 '스트링어'는 그러나 이 사진 한 장에 담긴 신화가 허구임을 주장한다. '닉 우트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응우옌탄응에란 베트남인이 인물이 닉 우트에게 20달러를 받고 판 사진'이란 것이다. 올해 1월 미국의 독립영화제 메카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스트링어'가 공개된 직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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