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경제난 반발 청년들 거리로…시위 격화로 사상자도 속출
SNS 매개로 자발적으로 뭉쳐…"현장에 정당 깃발 없어"
지난 9월 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의회 건물 앞에서 학생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지구촌 곳곳에서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 주도로 특권층의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반발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분노하는 Z세대가 소셜미디어(SNS)를 매개로 뭉쳐 기득권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 인니 '의원 주택 수당' 공분…네팔 'SNS 접속 차단' 폭발
아시아에서 벌어진 도미노 반정부 시위는 지난 8월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됐다.
작년 9월부터 인도네시아 하원 의원 580명이 주택 수당으로 1인당 월 5천만 루피아(약 430만원)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분노한 대학생과 노동자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해 방화와 약탈 등이 벌어졌다. 경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오토바이 배달 기사를 포함해 10명이 숨지고 20명이 실종됐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와 의회가 의원 주택수당을 포함한 여러 특혜를 폐지하고 내각 개편을 단행하면서 시위는 진정됐다.
이어 네팔에서는 정부가 지난달 5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26개 SNS 접속을 차단한 것을 계기로 폭동 수준의 과격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특권층 부패를 지켜보며 빈곤을 견디던 네팔 Z세대는 부패 척결과 경제 성장에 소극적인 정부에 실망하다가 SNS 접속 차단을 계기로 폭발했다.
지난 9월 9일 네팔 카트만두 싱하 두르바르 행정단지 앞에 시위대가 모여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행정 수반인 샤르마 올리 총리와 장관 4명의 사임에도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와 올리 총리 자택 등지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는 격화했다.
지난달 8∼9일 이틀 동안 벌어진 시위로 네팔에서 경찰관 3명을 포함한 72명이 숨지고 2천113명이 다쳤다.
동남아시아 최빈국 동티모르에서는 의회가 국회의원 65명에게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지급하려고 예산 420만 달러(약 58억2천만원)를 편성하자 대학생들이 반발했다.
대학생 2천명은 지난달 15일부터 사흘간 수도 딜리에서 공공기관 건물을 파손하고 정부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를 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달 21일 홍수 예방 사업 비리 발각을 계기로 정치권 비리 의혹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수도 마닐라의 대통령궁으로 향하던 시위대는 경찰이 차량으로 도로를 막자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자 216명이 체포되고 경찰관 95명이 다쳤다.
지난 9월 2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시위 도중 참가자들이 불타는 오토바이 앞에서 주먹을 치켜들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 마다가스카르 단수·단전 항의…모로코 '월드컵 유치' 예산 지출 비판
아시아에 이어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Z세대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동시다발로 펼쳐졌다.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는 지난 28일 대학생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공공 서비스 부실과 일자리 기회 부족 등에 대한 공분을 표출하며 거리 행진을 했다.
국민 다수의 뜻임을 주장하는 '우리가 99.9%다'라는 구호 아래 시위대는 정치권 부패를 비판하며 국가 예산 투명성과 치안 개선 등을 요구했다.
파라과이 경찰은 최루가스를 동원해 시위대 해산에 나섰고, 일부 참가자들은 돌을 던지며 이에 맞서는 등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페루에서도 연금 가입 의무화와 고용 불안정에 항의하며 정부와 국회를 규탄하는 Z세대 시위가 지난달 27일 수도 리마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청년들은 경찰관을 향해 화염병과 폭죽 등을 투척했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으로 대응했다.
지난 9월 28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시위 도중 시위 참가자들이 펜스를 무너뜨리고 있다.[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지난달 하순 수도 안타나나리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만연한 빈곤과 잦은 단수·단전에 항의하는 청년층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확산에 안드리 라조엘리나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 전원을 해임하고 국가 차원 문제 해결을 약속했으나 시위대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엔은 지난달 25∼26일 마다가스카르 경찰이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22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 다쳤다고 발표했다.
모로코에서도 지난달 27일부터 정부에 향상된 교육·의료 서비스를 요구하는 청년 시위대가 시위를 벌여 여러 도시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이들은 특히 203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공동 개최와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 유치를 위한 재정 집중 투입을 등 정부의 예산 지출 행태를 비판했다.
모로코 내무부는 지난달 30일 여러 도시에서 발생한 폭력 시위로 경찰관 263명과 민간인 23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다.
지난 9월 29이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 "소셜미디어로 뜻 공유하다가 자발적으로 나와"
나라마다 시위를 촉발한 사건은 다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층이 부패를 저지르는 특권층을 지켜보며 느끼는 분노가 공통적인 동력으로 꼽힌다.
이들 국가는 대체로 높은 실업률 등으로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는 와중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고 권력층의 부패도 만연해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지난 10년간 5%대 경제 성장률을 유지했으나 올해 상반기 공식적으로 해고된 노동자 수는 4만2천명을 넘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급증한 수치다.
네팔은 인구 3천만명 가운데 20% 이상이 빈곤층이며, 1인당 연 소득도 1천400달러(약 194만원)에 불과해 남아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고 가장 낮다.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대다수 네팔 청년과 달리, '네포 키즈'(nepo kids)로 불리는 부유층 자녀들은 사치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지난 9월 28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Z세대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활동하다가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는 점도 특징이다. 특정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이 주도하는 기존 시위와는 다른 양상이다.
ABC콜로르를 비롯한 파라과이 언론은 파라과이 시위 현장에서 정당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현수막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 뜻을 공유하다가 자발적으로 이곳에 나왔다"는 시위자들 언급을 덧붙였다.
페루에서도 파라과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청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패와 결핍을 방관하지 말자"는 취지의 의견을 교환하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모로코에서는 'Z세대 212', '모로코 청년의 목소리' 등 온라인에서 느슨하게 규합된 청년단체가 시위를 주도했다. 이들은 틱톡 등을 통해 메시지를 공유하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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