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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여러분은 손흥민 팬이에요, 토트넘 팬 아니에요”… 영국 판타지 깨부수는 영국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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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지극히 사적인 영국’ 펴낸 빈트

    신사의 나라이자 훌리건의 본고장… 영국인 시선으로 자국 ‘모순’ 파헤쳐

    “느리고 답답하죠… 그게 진짜 영국”

    “한국 연예계와 사교육에도 그림자… 있는 그대로 모순 드러낼수 있기를”

    동아일보

    어머니가 한국인인 영국인 피터 빈트 씨의 ‘지극히 사적인 영국’은 두 문화를 체험한 그의 영국 이야기이면서, 영국과 한국을 견주는 책이다. 그는 “영국 친구들은 제가 ‘한국은 빨리 변해’ 하면, ‘영국도 아파트 하나 생겼어’라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은 한 동네가 생겼다’고 답한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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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각하지 말아요. 여러분은 손흥민 팬이에요. 토트넘 팬 아니에요.”

    이 한마디로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영국인이 있다. 여러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활약하는 영국인 피터 빈트 씨(42)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 선수 소속팀이던 토트넘 홋스퍼의 ‘숙적’ 아스널 팬이다. “한국엔 토트넘 팬이 많으니 말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내놓은 응수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빈트 씨의 발언은 최근 다시 주목받았다. 손 선수가 토트넘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FC로 이적하며 ‘진실(?)’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2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그는 “영국에선 워낙 라이벌 팀을 놀리는 게 일상이니까,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처음엔 진짜 살벌한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피터 말이 맞았네’ 하는 반응이 더 많아졌어요.”

    그런 빈트 씨가 지난달 영국에 대한 ‘사이다’ 같은 시선이 담긴 책 ‘지극히 사적인 영국’(틈새책방)을 펴냈다. 그는 자국을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영국인의 절반 이상은 저처럼 노동자 계층이에요. 왕족이나 귀족은 우리에게도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죠.”

    영국은 모순의 나라다. ‘신사의 나라’로 불리지만 동시에 ‘훌리건의 본고장’이다. 왜 영국인들은 매너를 중시하면서도 축구장에선 난동꾼이 될까.

    “저도 그래요. ‘축구 보는 피터’와 ‘아빠 피터’는 다릅니다. 경기 보는 90분 동안은 다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에요. 주중 내내 일한 사람들이 경기장에 가서 마음껏 욕하고 술 마시고 소리치는 거죠. 일종의 ‘매너 있는 나라의 일시적 탈출구’랄까요.”

    빈트 씨는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어디나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이 있다”며 “영국은 그게 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버킹엄궁이 있는 나라에서 푸드뱅크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요. 불편하고 느리고 답답한 점도 많죠. 오래된 시설들도 그렇고. 그런데 그게 ‘진짜 영국’입니다. 그런 걸 경험하고도 좋아하면, 비로소 영국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한국 생활도 어느덧 17년째. 그는 한국도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힘들거나 부끄러운 면이 있는데 그걸 숨기고 긍정적인 것만 강조하면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의 연예계와 교육이다.

    “K팝 스타가 되는 과정엔 엄청난 역경이 있잖아요.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스타들도 있죠. ‘빌보드 넘버원을 이뤘지만, 누군가는 고통받는다.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해야 현실을 말하는 거죠. 숨긴다고 모르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인공지능(AI) 덕에 한국어 기사도 해외에서 쉽게 번역해 읽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숨기면 ‘뭔가 속이려는 건가’ 의심이 생길 수도 있죠.”

    한국에서 중1, 초4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인 빈트 씨. ‘빡센’ 사교육도 “부모로서 진짜 아니다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돈도 많이 들고, 학생들 정신 건강 문제도 있잖아요. 그 역시 부끄러워하며 감추는 건 좋지 않아요. 물론 지금 한국이 좋은 이미지니까 굳이 부정적인 얘길 해야 할까 싶을 수 있어요. 그럼 언제가 ‘적기’일까요? 영화 하나 더 터지고 나면? 지금처럼 긍정적인 분위기일 때 ‘동시에’ 문제도 거론해야 진짜 한국의 모습이 보여요.”

    다만 빈트 씨는 “한국이 싫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는 걸 강조했다.

    “저도 영국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그래도 책에서 엄청 깠어요(웃음). 사랑하는 마음과 비판적인 시선은 함께 있을 수 있어요. 그걸 솔직히 드러내는 게, 개인도 편하고 나라도 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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