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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장기 모니터링과 데이터…선진국엔 있고 한국엔 없다[되풀이되는 아동학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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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재학대 지표로 관리·평가

    英, 지방정부에 강력 책임

    사후 관리 과정 면밀히 추적

    부모교육 의무화·처벌 강화 필요

    아동학대 사건은 국가의 일회성 개입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진국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학대를 추적하고, 검증된 프로그램으로 위험을 낮추고 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 뒤 다시 안전을 위협받는지를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살피는 체계가 핵심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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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종결 이후 추적하는 나라들
    15일 미국 연방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가족청에 따르면 미국은 재학대를 지표로 관리한다. 특히 아동·가족서비스검토(CFSR) 제도를 통해 각 주의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하며, 가장 중요한 지표로 12개월 내 재학대율을 활용한다. 모든 주는 매년 이 수치를 보고해야 하고 낮을수록 우수한 성과로 인정받는다. 일부 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 BI' 대시보드를 통해 재학대율을 실시간 공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책 결정자들은 주 전체, 카운티별, 프로그램별 성과를 즉시 파악하고 낮은 실적을 보이는 지역에는 예산 조정이나 개선 명령을 내리고 있다.

    미국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프로그램을 재정으로 지원한다. 대표적인 것이 'NFP(Nurse-Family Partnership)', 'HFNY(Healthy Families New York)', 'SafeCare' 모델이다. NFP는 간호사가 임신기부터 아이가 2세가 될 때까지 가정을 방문해 부모 교육과 건강 관리를 지도한다. 여러 무작위대조시험에서 아동학대·방임 사건을 20~50% 줄이는 효과가 입증됐다. HFNY는 사회복지사가 3년 동안 정기적으로 가정을 찾아 부모-자녀 상호작용을 돕는다. 연구 결과 학대 가해자로 재등재될 위험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SafeCare는 18주간의 집중 프로그램으로 가정 안전 점검과 부모 교육을 결합해 임상시험에서 재학대율을 유의하게 낮췄다.

    영국은 지방정부에 강력한 책임을 묻는다. 가장 중요한 지표는 12개월 내 재접수율이다. 이는 아동보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아동이 1년 안에 다시 의뢰되는 비율을 뜻한다. 2023~2024년 기준 이 비율은 22.4%였다. 각 지방정부는 매월, 분기별로 이 수치를 자체 분석해 대책을 마련한다. 중앙정부는 정기 감사를 통해 성과를 평가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개선 권고를 내린다. 재접수율은 국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된다. 투명한 데이터와 엄격한 감사가 결합된 구조가 지방정부를 장기적인 아동 안전 관리로 밀어붙이는 동력이 된다.

    호주는 국가 차원에서 아동보호 데이터를 통합한다. 보건복지연구원(AIHW)은 매년 'Child Protection Australia' 보고서를 발간하며, 단순 사건 수를 넘어서 아동의 사후 관리를 추적한다. 첫 신고, 조사, 학대 판정, 법원 명령, 원가정 복귀·가정 밖 보호로 이어지는 과정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아이가 복귀 후 다시 보호체계에 접촉했는지, 어떤 서비스가 재학대 방지에 효과적인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 결과는 어떤 개입이 효과적인가에 대한 평가가 되고, 다음 해 정책과 예산에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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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나라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재학대율과 재접수율을 지표로 만들어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방정부나 주 단위로 성과를 관리하고 비교한다. 또한 성과가 낮은 지역엔 강력한 감사와 개선이 요구되며 효과가 입증된 장기 개입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아울러 데이터는 정책과 예산으로 즉각 반영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학대 통계가 여전히 단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국적인 표준화와 평가·확산 체계는 미흡하고, 장기 추적 데이터가 충분치 않다. 사건이 종결됐다는 행정 문구와 함께 아이들은 다시 위험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는 지자체가 사례를 관리하되 전문가들이 이를 평가하는 데만 그쳐 사실상 단기개입에 머물고 있다"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각 기관이 함께 아이의 상황을 단기적인 목표를 세워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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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이 지난달 18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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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 안 된 가정복귀 '예견된 비극'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부모가 바뀌지 않았는데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순간 비극이 되풀이된다"며 "대부분의 아동학대 가해자가 부모인 상황에서 상담·치료·교육 등 교정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재학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9년 인천의 한 아동은 계부의 학대로 시설로 보내졌다 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학대당해 사망했다.

    재학대는 단순히 상처를 반복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에게 이전보다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심각할 경우 사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협회장은 "학대 아동 100명 중 16명 정도는 재학대를 겪을 정도로 재학대 문제는 심각하다"며 "신고로 인한 부모의 보복심리로 재학대가 이뤄지면서 학대의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장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도 지적했다. 아동학대 수사는 경찰이, 조사는 지자체 공무원이 맡으면서 전문성이 떨어지고, 민원 부담에 적극적 조사가 꺼려지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처벌과 교정이 함께 이뤄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라는 평가다. 또한 인력과 시설 부족, 낮은 신고율도 여전히 숙제로 꼽혔다.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98개소에 불과하고 상담원 1명이 수십 명의 아동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쉼터도 전국 151개소에 그쳐 수용 한계로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잦다.

    이 협회장은 부모교육 의무화와 처벌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학대 경험이 있는 부모 상당수는 잘못된 양육 방식을 인식하지 못한다"며 "공교육 과정에 부모 역할 교육을 의무화하고, 가벼운 처벌 관행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정 내 학대 경험은 학교 폭력, 사회적 폭력으로 이어진다"며 "학대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 민법이 개정돼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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