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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노태우 비자금' 노소영 독 됐다…다시 뒤집힌 세기의 이혼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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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65)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금으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노 관장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 성장 기반이었다고 본 항소심의 판단이 대법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이제 재산분할액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게 새로 정해야 한다.



    대법 “노태우 비자금 인정하더라도 불법원인급여”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 선고 기일을 열어 “재산분할 청구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다만 위자료 20억원은 그대로 확정했다. 2017년 7월 최 회장이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만, 지난해 7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1년 3개월만의 판단이다.

    중앙일보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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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이 뒤집힌 건 최대 쟁점이었던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의 성격을 불법원인급여(도박·인신매매·뇌물 등 불법 행위에 기초해 행해진 급부)로 봤기 때문이다. 해당 비자금은 노 관장 모친 김옥숙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각각 작성한 ‘선경 300’ 메모와 약속어음 6장이 항소심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되며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항소심은 이 돈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건네져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보고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금을 책정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300억원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반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법상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746조)는 규정이 이 사건에도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기업인들로부터 2708억원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확정 판결됐던 점을 언급하며 “규모나 전달 시기에 비추어 (비자금은) 뇌물이 그 출처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함으로써 이에 관한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ㆍ반윤리성ㆍ반도덕성이 현저하여 법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노 관장 측이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도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고 배척했다. 뇌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준 행위가 “전체 법질서 관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이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에서의 기여를 포함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실제로 있었는지, 또 그 돈이 SK에 유입됐는지 등 사실관계는 별도 판단하지 않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사실의 존재 여부를 다투는 사실심인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법률 해석과 적용을 통해 어떤 행위나 사실이 법적 가치를 지니는지 보는 법률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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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처분재산’도 분할대상서 제외



    비자금뿐 아니라 최 회장이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이나 SK그룹에 반납한 급여 등도 대법원은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최 회장은 2012년부터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한 증여, SK그룹에 대한 급여 반납 등으로 927억7천600만원을 처분하고, 최 수석부회장의 증여세 246억원을 대신 납부했다.

    또 2014년 8월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에 SK C&C 주식 9만1천895주를, 같은 해 10월 최종원 학술원에 SK주식회사 주식 20만주를, 11월에 친인척 18명에게 SK주식회사 주식 329만주를 증여했다. 위 금액들에 대해 항소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의 동의나 양해 없이 부부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임의로 처분한 재산”이라며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재산의 처분 시기가 항소심이 인정한 혼인 관계 파탄일(2019년 12월 4일) 이전일 뿐 아니라, 처분의 목적 또한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ㆍ유지와 관련된 것이라고 봤다. 최 회장이 SK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영 활동의일환으로 부부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이라고 불 수 있다면서다.

    즉 “혼인 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 일방이 부부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재산의 형성ㆍ유지와 관련 없이 적극재산을 처분했다면 해당 적극재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보아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으나, 그 처분이 부부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혼소송에서 이른바 ‘재산 빼돌리기’나 ‘재산 숨기기’를 목적으로 이혼을 앞두고 재산을 처분하는 상황을 비롯해 이혼 소송 시점에 어떠한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는가에 관해 대법원이 판단한 첫 기준이기도 하다.



    655억→1조3808억→파기…결국 독 된 노태우 비자금



    이 사건은 재산 분할액이 1심에서 655억원이었다가 2심에서 20배가 넘는 1조 3808억원으로 뛰면서 ‘세기의 이혼’으로 불렸다. 항소심 과정에서 노태우 비자금이 증거로 제출되고, 정경유착과 같은 어두운 현대사의 굴곡이 재판 쟁점에 포함됐다. 역대 최고액인 재산분할액이 최종 인정된다면 재계 2위 SK그룹의 지배구조도 출렁일 수 밖에 없었다.

    2022년 12월 1심 때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증거로 제출되기 전이어서 최 회장의 SK 주식을 제외한 665억원만이 재산 분할액으로 선고됐다. 하지만 항소심 과정에서 노태우 비자금이 등장하면서 재판 양상이 확 달라졌다. 당시 최 회장 측은 “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받았더라도 반사회 범죄로 얻은 수익”이라고 주장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1991년 최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억 원 정도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은 것 자체가 불법원인급여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200억원을 숨기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에게 빌려준 것을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2001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면서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를 다시 뒤집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민법 746조의 취지를 재확인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향후 이 사건은 원심 판단이 이뤄졌던 서울고법 가사2부가 아닌 가사1부 또는 가사3부 중 한 곳으로 무작위 배당된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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