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협,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응답자 절반 "최근 1년 새 인권침해 경험"
"상급자 폭언 지속…수술 중 교수가 '병X' 욕설도"
간협, 정부와 제도개선 논의…'심리상담 전문가단' 출범

신경림 대한간호협회(간협) 회장이 21일 서울 중구 간협 간호인력지원센터에서 열린 '간호사 인권 보호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 및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 발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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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으면 '우리 집 개도 너 보다 말 잘 듣는다'는 등 폭언이 이어집니다." (인권침해 피해 간호사A)

"수술 중 교수로부터 '병X'이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인권침해 피해 간호사B)

대한간호협회(간협)가 의료 현장에서 경험한 간호사 인권침해 사례를 공개, 정부에 신고자 보호·재발 방지 구축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안을 제안했다고 21일 밝혔다.

신경림 간협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간협 간호인력지원센터에서 '간호사 인권 보호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와 보호자가 지켜보는 공개된 공간에서도 간호사 상대의 모욕과 폭력이 일상화됐다"며 "더 이상 인권침해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간협이 이날 공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응답자 788명)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50.8%)이 '최근 1년 새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응답, 이 중 71.8%는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인권침해 유형으로는 △폭언(81.0%) △직장 내 괴롭힘 및 갑질(69.3%)이 가장 많았고,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53.3%), '의사'(52.8%), '환자 및 보호자'(43.0%)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발생한 공간은 주로 병동 등 환자·보호자가 함께 있는 공간(79.0%)이었다.

신고 포기 이유로는 '신고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67.2%)가 가장 많았다. 실제 신고 후에도 '기관의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이 69.0%에 달했다. 인권침해 후 간호사들이 겪은 감정으로는 △분노(80.3%) △자존감 저하(74.5%) △우울·좌절감(66.3%) 등이 꼽혔으며 '자살 충동'을 느꼈단 응답도 17.5%에 달했다. 피해를 겪은 간호사들의 80.8%가 '업무 집중도 저하'를 호소했고 65.3%는 '휴직 또는 사직을 고려'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서울 중구 간협 간호인력지원센터에서 열린 '간호사 인권 보호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 및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 발대식'에서 간호삭들의 인권침해 피해 사례 일부가 음성으로 공개됐다. /사진=홍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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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견에선 현장 간호사가 겪은 인권침해 사례 일부가 음성으로 공개됐다. 한 현장 간호사 A씨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병동 차지(Charge·책임) 간호사 기분을 살펴야 한다"며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얼굴에 대고 악을 지르거나 대꾸도 못 하게 '미친거지' '너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 '머리가 있냐 없냐' 식으로 윽박지른다. '우리 집 개도 너보다 말을 잘 듣는다' 등 폭언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수술실에서 근무 중이라고 밝힌 간호사 B씨는 "수술 중 교수가 '병신X' '병X 같은 짓만 한다' '병X 같은 것들'이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병원에 신고 체계가 있지만 전혀 역할이 없다. 신고자가 누군지 금방 알려지고 가해자는 아무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의사가 기분에 따라 간호사를 감정적으로 대한다. (의사)가족이 입원했을 때 간호사에게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 "악성 민원·무례한 대우에도 병원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뿐" 등 사례가 이어졌다.

간협은 이날 공식 출범한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을 통해 간호인력지원센터 중심의 심리상담 지원 및 조직문화 개선 사업을 본격화하겠단 입장이다. 간협은 지원센터 10개 권역별 3명 내외의 상담사로 구성, 현재까지 선발된 총 24명의 상담사를 통해 간호사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김숙자 정신간호사회장은 "권역별로 간호사들의 신청을 받아 비밀 유지 원칙에 따라 상담이 이뤄질 것"이라며 "조직문화의 문제점 파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협은 이번 실태조사를 토대로 △신고 및 조치 전(全)주기 표준화 △신고자 보호·2차 가해 금지 △재발 방지 체계 구축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안을 정부에 제안했다고도 전했다. 최훈화 간협 정책국장은 정부와의 대화 진행 상황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의에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에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공유했다"며 "태움(간호사간 괴롭힘을 뜻하는 말) 양산의 원인이 (과다한) 환자 수와 교대 근무의 어려움 등 복합적 부분에 있는 만큼, 현재 정부·국회와 관련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홍효진 기자 hyo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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