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죄가 없다. 항상 운영이 문제다. 신도 아닌 인간이 만든 제도가 완벽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완벽하게 만든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이런저런 모순이 드러나게 된다. 국회나 대통령이 4년이나 5년의 짧은 임기 동안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급증에 걸린 것처럼, 혹은 전지전능한 것처럼 제도를 뚝딱 만들려고 한다.
필자는 대한변호사협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역임하면서 우리 법률과 제도의 제, 개정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다. 매번 조금만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폐해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도입하면 좋을텐데, 정치적 이해관계와 갈등 때문에 성급하게 추진한 후 문제를 노출시키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다. 로스쿨이 그랬고, 공수처가 그랬고, 검경수사권 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대법관 정원 증가와 관련한 여당의 사법개혁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법관의 수는 헌법이 아니라 법원조직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숫자는 약간의 증감이 있지만 제헌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대법관 숫자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없이 국회에서 변경할 수 있었다.
우리는 법원 판결에 쉽게 승복하지 못한다.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지만, 부실한 하급심 절차와 판결에 대한 불만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이유로 상고심의 사건 적체와 정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재판의 지연은 거부와 같다. 신속하게 구제받아야 할 국민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그 구성원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며 다양한 국민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관 증원이 필요하더라도 공정성의 담보를 전제로 진행해야 한다. 여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사법개혁안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을 제외하고 현 대통령은 임기 중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의도를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임기가 5년인 대통령보다 긴 임기 6년의 대법관들의 절대 다수를 한 정권에서 임명한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1948년 5월 4일 대법원이 설립된 지 80년이 다 되어 간다. 대법관을 대폭 증원한다고 하더라도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매년 1, 2명씩 순차적으로 증원하면서 최소 10년 이상 장기 계획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정권이 연장되면 국민의 지지를 받았기에 계속해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약할 것이다. 반대로 정권이 교체돼 새로운 정부가 대법관을 임명하게 되면 국민의 의사가 신속하게 반영된 것이 돼 대법원 구성에 민주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제도란 한번 만들어지면 국민적 합의로 변경될 때까지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그동안 있는 제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망가트리는 보수와 기존 제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자꾸 무엇인가를 만드는 진보 사이에 쓸데없는 국력낭비와 국민갈등을 심화시켰다.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개별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한 대법원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이찬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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